<호소문>시민 여러분께 드리는 글

조회 수 1192 추천 수 0 2008.05.30 10:32:57

호소문

시민 여러분께 드리는 글


시민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저희는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활동하고 있는 인권단체들입니다.(혹은 인권단체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입니다)

문득 유난히 차가웠던 2005년의 겨울을 떠올려 봅니다. 여럿이 함께 걷는데도 유독 쓸쓸했고, 신발 속의 발가락이 너무도 시렸던 날, 한 빈소를 찾았습니다. 영정 속에 계신 분은 경찰의 방패에 머리를 맞아 세상을 떠난 한 농민이었습니다. 시멘트 바닥에 마치 칼을 갈듯 갈아댄 경찰의 방패는 정말 칼이 되어 우리에게 되돌아 왔습니다. 누구는 앞으로 살아갈 걱정에 종이컵 한잔 가득 깡소주를 빈속에 밀어 넣고 있을 때, 누구는 다리 한 번 쭉 피지 못하는 쪽방에서 새우잠을 자고 있을 때, 누구는 쓰레기통을 뒤지며 먹을 것을 찾고 있을 때, 이들이 ‘살고 싶다’라고 외치고 있을 때 경찰의 방패는 어김없이 칼이 되어 이 사람들을 삶의 벼랑 끝으로 밀고 있습니다.

이제는 세상이 좋아졌다고 합니다. 국가는 국민이 주인이고, 더 이상 국가는 국민을 탄압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거리를 뿌옇게 칠하던 최루탄은 이제 없어졌고, 욕조 한 가득 채운 물속에 얼굴을 쳐박는 고문 따위는 이제 없어졌다고, 이제 이렇게 세상은 좋아졌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이 큰 착각이었다는 것을 지금 이 거리에서 다시 깨닫고 있습니다. 여전히 경찰의 방패는 거리의 사람들을 향하고 있고, 정부는 헌법에도 보장되어 있는 국민의 권리를 여러 방법을 동원하여 억압하고 있습니다.

[헌법 제1조 ①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②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헌법 제1조에서도 알 수 있듯이,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고, 그 주인은 국민입니다. 대한민국은 그 나라의 대통령의 계산법에 의해 좌지우지 되는 나라가 아니라, 국민의 뜻을 따르고, 국가는 국민의 안전과 인권을 보장하고 보호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의 국가는 이 거리에 앉아있는 국민들을 조종하는 세력이 있다고 하며, 국민들을 대놓고 무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치 불과 몇십년 전의 독재정권을 연상시키듯이 ‘공안대책회의’라는 것을 꾸리고 있습니다. 이러한 행태는 이명박 정부가 이번 거리 시위의 본질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국민이 국가에게 요구하는 큰 목소리를 무시하고, 그저 어떤 운동세력이 무지한! ! 국민을 조종하고 있다고, 끊임없이 생각하는 것입니다. 더 이상 국가와 국민간의 신뢰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다시 깨달았습니다. 우리가 그토록 숱한 생명을 떠나보내며 갈망하였던 세상이 오지 않았다는 것을 말입니다. 하루의 피곤에 찌든 무거운 눈꺼풀을 다시 부릅뜨며 거리에 서야 하는 이유, 공부 열심히 해서 훌륭한 사람이 되라는 최면을 받던 청소년들이 다시 거리로 나서야 하는 이유, 사람도 죽일 수 있는 저 무서운 방패 앞에 우리가 다시 다가서야 하는 이유, 우리는 그것을 민주주의라고 부릅니다.

다시 한 번,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옵니다. 인도에서 드는 촛불이든, 차도에서 드는 촛불이든, 마음은 한 가지입니다. 광우병 쇠고기를 막아내는 것뿐만 아니라, 우리의 인권이 존중받고,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언젠가 이 촛불은 다시 꺼질 것입니다. 또 언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올 지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지금 이 거리에서의 염원의 끈을 놓지 않는다면 이명박 정권 또한 계속해서 진정한 주인의 힘을 두려워할 것입니다. 누군가 말했던 것처럼, 봄은 산 너머 오는 것이 아니라 언 땅을 뚫고 올라오는 것입니다. 척박하고 차갑게 얼어붙은 민주주의의 이 땅을 우리의 촛불로, 우리의 외침으로 녹여 모든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날을 만들어 봅시다.


인권단체들 (연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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