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7 제임스 본드, 보건복지부?
 

홍 기자의 뉴스 톡톡 ⑤
필요한 서비스를 받기 위해 요구되는 것은 '정치적 힘'

2012.10.12 16:54 입력

 

▲ 지난 10일 긴급기자회견을 마친 공동행동 활동가들이 '복지 박탈부', '가짜 복지부', '사기 복지부'라고 쓴 종이를 붙인 모습입니다.

 

최근 한 나라의 보건과 복지를 책임진다는 공무원들이 막중한 책임감에 졸린 눈을 비비며 밤늦게까지 일하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해준 일이 있었습니다.

 

유력한 대선후보 중의 한 명인 안철수 후보가 정책비전 선언문을 지난 7일 발표하자, 이날 밤 복지부는 안 후보가 선언문에서 언급한 기초생활보장 관련 사례에 대해 정확한 사실관계를 밝힌다며 보도설명자료를 뿌렸습니다.

 

핵심 내용은 지난 8월 수급자에서 탈락한 뒤 거제시청 화단에서 제초제를 마시고 고통스럽게 생을 마감한 이아무개 할머니의 부양의무자 소득이 무려 월 813만 원(딸 소득 260만 원 + 사위소득 553만 원)이었기 때문에 적법한 절차에 따라 조치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내용은 이전에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 공동행동(아래 공동행동) 등이 이미 요구했지만 복지부가 개인 정보라며 공개를 거부한 것입니다. 그토록 개인 정보를 소중하게 여기던 복지부가 한순간에 ‘신념’을 저버린 이유는 그 이후에 벌어진 일로 추측할 수 있습니다.

 

이날 밤부터 떡밥에 몰려든 물고기 떼처럼 보수언론과 일부 누리꾼들이 ‘억대 연봉’을 받는 부양의무자가 있었다는데 ‘분노’했다며 안 후보에 대한 비난을 쏟아냈기 때문입니다. 즉, 복지부는 부양의무제 폐지 요구에 ‘억대 연봉의 부양의무자'라는 ‘돌직구’를 던진 것입니다.

 

하지만 복지부가 밝힌 사실은 사회복지통합관리망에 담긴 숫자에 불과합니다. 이 숫자에는 홀로 수급자로 살아야만 했던 이 할머니의 지난 십 년의 세월과 스스로 목숨을 거두기 전까지 밀렸던 몇 달 치 단칸방 월세, 하청업체에서 일하는 딸 부부가 그 정도 수입을 얻기 위해서 했야 했을 어마어마한 야근과 특근의 양, 월 813만 원은 세전 소득으로 실수령은 그보다 적으며 빚에 시달려 그 소득을 온전히 4인 가족의 생활비로 쓰지 못한다는 사실 등은 한 점도 담겨 있지 않습니다.

 

더구나 복지부는 딸 부부의 간주부양비가 56만 원으로 1인 최저생계비 55만 3354원보다 단지 7천 원 정도가 많아 아슬아슬하게 수급에서 탈락한 사례라는 내용은 밝히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부양의무자의 소득 수준이 매우 높다는 점' 등과 같은 표현으로 적법하게 처리한 사례였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 복지부가 7일 밤에 뿌린 보도설명자료입니다.

 

이에 공동행동은 10일 오전 복지부 앞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복지부 이름을 ‘복지 박탈부’, ‘가짜 복지부’, ‘사기 복지부’라는 퍼포먼스를 선보이며 망자 앞에 사죄하라고 요구했습니다.

 

공동행동은 이날 성명서에서 “이렇게 끝없이 반복되는 부양의무제 때문에 일어나는 모든 죽음에 대해 복지부의 대답은 한결같이 ‘적법했다’라는 것이다”라면서 “중요한 것은 당신들이 철통같이 지킨 그 법 때문에 사람이 죽었다는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유명한 시리즈 영화의 주인공인 007 제임스 본드는 이른바 ‘살인 면허’라는 것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살인 면허’는 첩보원에게 작전 중 사람을 죽여도 기소하지 않는 ‘초법적 면책 특권’을 부여합니다.

 

이건 영화의 흥미를 위한 비현실적 설정입니다. 그런데 연이어 터지는 죽음 앞에서 ‘적법했다’라고 앵무새처럼 답하는 복지부는 마치 ‘법적 면책 특권’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건 도대체 무엇을 위한 현실적 설정인지 묻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한편, 이날 오후 이룸센터에서는 장애인활동지원제도 시행 1년을 맞아 수급자격 갱신과 인정조사 방식을 중심으로 평가하는 토론회가 열렸습니다.
 

이 자리에서 나온 이야기를 정리하면 복지부는 다음과 같은 3단 논법으로 장애인활동지원 수급자격 갱신 문제를 보고 있다고 합니다.

 

1. 기존에 지자체에서 부여한 인정점수가 지나치게 후하다.
2. 수급자격 갱신을 위해 국민연금공단에서 인정조사를 다시 하면 대거 탈락할 것이다.
3. 그렇다면 인정조사표를 다시 개편하겠다.

 

토론회에서도 ‘장애인들에게는 인정점수를 높게 받기 위한 노하우가 있을 정도’라는 말이 나왔으니 복지부 말대로 지자체에서 기존에 부여한 인정점수가 후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인정점수가 높다고 해서 장애인들이 서비스를 넘치게 받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애당초 최고로 높은 인정등급을 받더라도 필요한 서비스 시간을 제공받기 어렵기 때문에 ‘노하우’까지 만들어진 것입니다.

 

따라서 장애인들이 노하우에 매달릴 필요가 없이 떳떳하게 인정조사를 받아서 필요한 서비스를 필요한 만큼 이용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 맞습니다. 방법은 간단합니다. 인정조사에 따른 등급기준을 완화하면 됩니다.

 

하지만 복지부는 예산이 많이 들기 때문에 그럴 생각이 없는 것 같습니다. 장애인계에서 줄기차게 요구하지만, 이번에도 사회적 환경과 욕구를 반영하지 않는 방향으로 인정조사 개편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고 합니다.

 

즉, 의학적 기준만을 더 강화하고 장애유형간 형평성을 다소 고려하는 선에서 인정조사표를 개편해 인정등급이 떨어지더라도 당사자가 할 말이 없게 만드는 게 목적이 아닌가 싶습니다.

 

다시 007 제임스 본드 이야기를 해봅니다. 제임스 본드는 신기한 첩보 무기를 사용해 위기를 벗어납니다. 예를 들면 손목시계에 레이저 무기가 장착되어 있어 자신을 묶은 줄을 아무도 모르게 녹여 버립니다.

 

복지부도 장애인의 생존권 요구가 거세질 때마다 갖가지 무기를 사용해왔습니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의학적 기준’입니다. 의학적 기준은 객관이라는 외피를 쓰고 장애인의 요구를 짓누릅니다. 우리는 이미 장애등급제에서 의학적 기준이라는 것이 장애인의 삶과 얼마나 동떨어질 수 있는가를 목격한 바 있습니다. 제임스 본드와 다른 점이 있다면 복지부의 무기는 식상하다는 정도일 것입니다.

 

결국 이날 토론회에서 장애인들이 필요한 만큼 필요한 서비스를 받을 수 있기 위해 요구되는 것은 이를 가능하게 할 ‘정치적 힘’이라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부양의무제 폐지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정부도 알아서 챙겨주는 일은 없다는 이야기겠지요. 상대는 ‘법적 면책 특권’에 ‘소득·재산 기준’, ‘의학적 기준’ 등과 같은 객관적인 무기까지 가지고 있습니다. 자, 어찌할까요?

 

▲ 지난 2010년 장애등급제폐지공대위 출범식에서 중증장애인들이 장애등급 하락으로 말미암아 활동보조서비스, 장애인연금 등 복지서비스에서 탈락한 피해 사례를 증언한 후, 장애인의 생존권을 좌지우지하는 장애등급제를 폐지할 것을 촉구하는 상징의식을 진행하는 모습입니다.



 
홍권호 기자 shuita@beminor.com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sort

[전북도민일보]장애인콜택시 불편해서 못 타겠다 [44]

장애인콜택시 불편해서 못 타겠다 임동진기자 | . // 승인 2013.01.29 Tweet ▲ 전북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29일 전주시청 노송광장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장애인 콜택시 이용에 관한 불편사항 개선과 운영에 관한 철저한 관리감독을 전주시에 요구했다. 신상...

[비마이너] 007 제임스 본드, 보건복지부? [173]

007 제임스 본드, 보건복지부? 홍 기자의 뉴스 톡톡 ⑤ 필요한 서비스를 받기 위해 요구되는 것은 '정치적 힘' 2012.10.12 16:54 입력 ▲ 지난 10일 긴급기자회견을 마친 공동행동 활동가들이 '복지 박탈부', '가짜 복지부', '사기 복지부'라고 쓴 종이를 붙인 ...

[able-news]전주시 사회적 일자리, 장애인 비중 미약

전주시 사회적 일자리, 장애인 비중 미약 송경태 시의원, 5분 발언 통해 확대 노력 촉구 장애인 자립생활지원 조례 등 제도적 보완 필요 에이블뉴스, 기사작성일 : 2009-04-09 10:36:06 전북장애인신문 (jbnew119@korea.com)

[비마이너] "소수 탐욕이 만든 빈곤, 이제 끝내야 한다"

"소수 탐욕이 만든 빈곤, 이제 끝내야 한다" 1017조직위, 빈곤철폐의 날 요구발표 기자회견 개최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 없는 복지는 기만" 2012.10.17 14:28 입력 ▲2012 1017 빈곤철폐의 날 조직위원회는 17일 이른 11시 광화문광장 이순신 동상 앞에...

[전민일보]"눈치 안보고 맘껏 타보고 싶은데…" [36]

"눈치 안보고 맘껏 타보고 싶은데…" 기획. 전북 장애인이동권 어디까지 왔나-저상버스 김병진기자2013년 02월 05일 09시 15분 <전북 장애인이동권 어디까지 왔나-상> “자유롭게 버스타고 이동할 권리를 보장하라” 시민이면 누구나 이용하도록 되어 있는 대중...


오늘 :
224 / 830
어제 :
206 / 784
전체 :
568,198 / 18,835,904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