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등급제 폐지의 미래, 노르웨이에서 보다
 

광화문역 농성장에서 '노르웨이 장애인 복지정책' 현장 강의
"보편적·포괄적 복지로 장애인만을 위한 법이나 제도 없어"

2012.10.24 22:46 입력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 공동행동이 65일째 농성 중인 광화문역에서 '노르웨이 장애인 복지정책'이라는 주제로 현장 강의가 열렸다.

 

몇 급 장애인이라는 낙인 없이 장애가 있는 사람들이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분배를 받는 사회는 가능할까? 그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우리 사회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까?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 공동행동이 65일째 농성을 이어가고 있는 광화문역에서 이러한 질문에 대한 해답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됐다.

 

노르웨이 오슬로 대학에서 특수요구교육 석사과정을 공부하고 있는 윤상원(시각장애 6급) 씨는 24일 저녁 6시 ‘노르웨이 장애인 복지정책’이라는 주제로 현장 강연에 나섰다.

 

이날 강의에서 윤 씨는 “노르웨이 복지는 장애인, 노인, 아동 등 대상을 분리하지 않고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욕구에 따라 지원하는 보편적·포괄적 복지”라면서 “따라서 노르웨이에는 장애등급은 물론 장애인등록도 없고 장애인복지법, 특수교육법, 장애인차별금지법과 같은 법도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전했다.

 

윤 씨는 “물론 과거에 노르웨이에도 장애인을 시설 등에 분리한 역사가 있고 특수교육법과 같은 법도 있었다”라면서 “하지만 1950년대 정상화 운동으로 특수교육법과 같은 법은 폐지되었으며, 1990년에 지적장애인 시설 폐쇄로 시설보호에서 지역사회보호로 완전 전환이 이뤄졌다”라고 설명했다.

 

윤 씨는 “노르웨이에서 정상화 운동의 이념은 한국에서 오해하는 것처럼 장애인을 비장애인에 가깝게 만들어야 한다는 식이 아니라 정상적인 사회를 만들어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동등하게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라면서 “따라서 노르웨이에서는 영미 국가의 장애학과 같은 관점도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라고 덧붙였다.

 

▲강의 중인 윤상원 씨.

 

이어 윤 씨는 노르웨이의 활동보조서비스와 주거정책, 고용정책 등을 소개했다.

 

윤 씨는 “노르웨이에서 활동보조서비스는 1994년에 도입되어 2000년에 제도화되었는데 1주일에 20시간 이상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기준으로 지원하고 있다”라면서 “지원 시간에 제한은 없으며 개인이 직접 활동보조인을 고용할 수도 있지만, 대체로 지방정부 또는 장애인단체가 활동보조인의 고용주로 활동하고 있다”라고 전했다.

 

윤 씨는 “노르웨이에서는 한국과 달리 가족이 활동보조인이 될 수 있으나 한국에서 우려하는 것처럼 가족이 활동보조를 통해 장애인을 착취하는 경우도 없다”라면서 “그 이유는 의료, 교육 등이 무료인 노르웨이에서는 기본적인 생활이 보장되어 착취할 이유 자체가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윤 씨는 “그룹홈의 경우 한국처럼 한 아파트에 여러 명의 장애인이 모여 사는 식이 아니라 1인당 17평 이상의 개별 침실, 화장실, 부엌, 욕실 등을 갖춘 독립된 하나의 주거공간을 제공하는 개념”이라면서 “의료적인 지원이 계속 필요한 경우나 개별 주거의 경우에도 위와 같은 주거공간을 제공하고 있다”라고 전했다.

 

윤 씨는 “고용의 경우 장애인고용비율은 공공부문은 11.6%, 사기업은 8.5%에 이르며 남녀 장애인 간의 고용률의 차이가 없는 것이 특징”이라면서 “그렇다고 해서 장애인을 위한 특별한 우선고용정책이나 장애인고용할당제 같은 의무제도가 있는 것은 아니며, 복지와 노동의 연계라는 복지의 기본 방향에 따라 각종 고용지원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윤 씨는 노르웨이에서 보편적 복지가 가능한 이유에 대해 “노르웨이는 ‘아래로부터의 힘’이 매우 강한 시민사회이면서 철저히 공공을 중심으로 움직이기 때문”이라면서 “예를 들면 대부분의 특수학교를 없앤 것은 장애인 부모의 요구에 따른 것이고, 특수학교 중 청각장애인과 시각장애인을 위한 학교를 그대로 둔 것은 장애인당사자의 요구에 따른 것”이라고 전했다.

 

윤 씨는 “어떤 사람들은 노르웨이에서 보편적 복지가 가능한 이유로 석유를 이야기하는데 석유가 나오기 전부터 노르웨이는 보편적 복지의 길을 걸어왔고 석유로 얻은 돈은 후대를 위해 투자되고 있다”라면서 “결론적으로 노르웨이는 자본주의 사회라는 한계는 분명히 있지만,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분배를 하기 위해 노력하는 나라”라고 강조했다.

 

질의응답 시간에는 “보편적 복지를 하기 위한 재원을 어떻게 마련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이 나왔다.

 

이에 대해 윤 씨는 “노르웨이 사람들은 소득의 45%가량을 세금으로 내고 있지만, 무상으로 의료와 복지를 지원받고 기본생활에 필요한 소득을 보장받으므로 전혀 억울해하지 않는다”라면서 “더구나 노르웨이에서는 소득에 대해서 언급하는 것조차 천박한 일로 여기며 검소한 생활에 익숙해 있다”라고 전했다.

 

이어 한 참가자는 “한국에서는 민간이 사회복지시설과 학교 대부분을 운영하고 있어 시설과 특수학교를 폐쇄하려면 엄청난 저항에 직면하는데 노르웨이에서는 그것이 어떻게 가능했는가?”라고 물었다.

 

이에 대해 윤 씨는 “노르웨이는 사립학교의 비율이 2%에 불과하고 대안학교조차 공립”이라면서 “따라서 노르웨이에서는 공공으로 운영하는 시설과 특수학교를 ‘아래로부터의 요구’에 따라 폐쇄하기 쉬웠을 것으로 보이며, 장애인단체들도 서비스제공기관의 역할을 하지 않고 역량강화 역할만을 하고 있다”라고 답했다.

 

▲참가자들이 궁금한 점을 질문하는 모습.



 
홍권호 기자 shuita@bemino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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