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위, 올해 장차법 모니터링 결과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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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접근 불가능한 투표소… 대선까지 보완해야”
참정권·의료시설·문화시설 접근성, 장애유형에 따라 불균형 심해

2012.11.23 01:35 입력

 

▲2012 장차법 모니터링 결과 보고회가 국가인권위원회 주최로 21일 늦은 2시 이룸센터에서 열렸다.

 

“의료기관 접근성을 조사하기 위해 제주의 한 병원을 방문했습니다. 그 병원은 휠체어가 편히 들어갈 수 있는 경사로와 장애인화장실, 그리고 시각장애인을 위한 촉지도 안내판, 장애인주차장이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또한, 병원에 요구하면 점자자료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 정도면 누가 봐도 장애인 편의시설을 완벽하게 제공하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장애인당사자 입장에서는 꼭 그렇지만도 않습니다.

▲제주 모니터링단 임형민 단원
 
의료기관은 장애인 이용 빈도도 높지만 일시적 장애를 입은 사람들의 이용도 많은 곳입니다. 그런데 그에 비해 장애인화장실 개수는 너무 적었습니다. 장애인화장실은 휠체어 이용자만 사용하는 게 아니라 다리에 깁스해서 다리를 접을 수 없는 사람, 링거를 맞고 있어 거치대에 링거를 걸고 다니는 사람 등 다양한 사람들이 이용합니다. 그런데 장애인화장실은 한 층에 겨우 하나 정도였고, 더욱이 남자용과 여자용을 구분하지 않고 공용으로 만들어놨습니다.

 

장애인주차장 또한 일반 주차장에 장애인 주차공간 표시만 해두는 경우가 비일비재했습니다. 장애인주차장은 휠체어 이용자 및 보행에 어려움이 있는 장애인의 승하차 편의를 위해 주차장 폭을 일반 주차 공간보다 충분히 확보해놔야 합니다. 장애인에 대해 편의제공을 하지 않는 것도 문제지만, 이러한 형식적 제공은 오히려 장애인 당사자를 우롱하는 행태입니다.” (제주 모니터링단 임형민 단원)

 

“얼마 전 친척이 갑자기 아파 서울에서 가장 좋다는 ㅅ병원 응급실에 갔습니다. 그런데 때마침 그곳에서 휠체어 이용 장애인 한 분이 응급실 접수대에서 접수하는 모습을 봤는데 굉장히 불편해 보였습니다. 한눈에 봐도 접수대의 높이는 장애인차별금지법(아래 장차법)에서 정한 규격이 아니었습니다. 서울에서 제일 좋다는 병원마저 법에서 정한 규격을 지키지 않고 있었던 겁니다.” (서울 모니터링단 정방섭 단원)

 

2012 장차법 모니터링 결과 보고회가 국가인권위원회(아래 인권위) 주최로 지난 21일 늦은 2시 이룸센터에서 열렸다.

 

이날 인권위는 이번 한 해 동안 서울, 제주, 대전 등에서 모니터링 단원으로 활동한 당사자들의 이야기와 함께 올 한 해 시행된 장차법 현장 모니터링 결과를 발표했다. 인권위는 4월엔 장애인 참정권, 5월엔 의료기관 이용, 6월엔 문화·예술시설 이용 등에 대해 모니터링을 진행했다.

 

장애인 참정권, 2010년 6.2 지방선거 때보다 좋아졌으나 여전히 미흡

 

참정권 모니터링은 4.11 총선을 앞두고 4월 1일에서 11일까지 선거기간 동안 이뤄졌다. 모니터링 항목에는 투표소와 기표대 접근성, 투표 관련 정당한 편의제공, 선거관리위원회(아래 선관위) 투표안내문과 누리집 정보 접근성 등이 포함됐다.

 

투표소는 모니터링 단원이 속한 선거구 투표소를 중심으로 전국 167개소를 선정했으며, 51개 선거구의 선관위에서 발송한 투표안내문, 전국 64개 선관위 누리집을 모니터링 대상으로 했다. 이번 모니터링에는 총 143명이 참가했으며 이중 장애인 참가비율은 약 67%였다.

 

투표소 접근성은 지체장애인을 위한 주출입구와 층별 이동 등 물리적 환경을, 정당한 편의제공은 휠체어 이용 장애인들을 위한 투표 가능 기표대, 투표보조인력 배치,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투표용지 또는 투표보조용구 등이 세부항목에 포함됐다.

 

안내문과 누리집 정보 접근성 항목에서는 시청각장애인을 위한 점자형·보이스아이 삽입형·확대문자로 된 투표안내문 제공, 누리집 내 동영상 자막 또는 수화통역 제공 여부 등을 모니터링 했다.

▲장애인차별조사1과 권미진 씨
 
이날 발표를 맡은 인권위 장애인차별조사1과 권미진 씨는 “투표소 주 출입구와 기표대 등의 시설물 접근성은 비교적 양호했으나, 일부 투표소는 경사로를 설치하지 않거나 주출입구 앞을 자판기가 가로막고 있는 등 휠체어 이용 장애인의 접근성을 고려하지 않았다”라면서 “계단이나 턱 등 주 출입구 높낮이차를 제거한 투표소 비율은 91.1%로 이는 2010년 6·2 전국동시지방선거 모니터링 결과인 68.8%에 비교했을 때 꽤 높은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권 씨는 “정당한 편의제공은 대체로 양호한 편이었으나 높낮이 조절용 기표대의 경우, 전동휠체어 이용자에게는 좁아 비밀투표가 보장되지 않았다”라며 “시각장애인에게 투표보조용구는 제공되었으나 기표 칸이 좁아 기표하는 데 있어 시각장애인들이 어려움을 겪었다”라고 지적했다.

 

권 씨는 “167개소 중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투표용지 및 투표보조용구가 제공된 곳은 164개소로 98.2%”라면서 “이 또한 2010년 6·2 지방선거 당시 57.6%에 비해 상당히 증가했다”라고 밝혔다.

 

권 씨는 “투표소 접근권은 기표를 위한 가장 기초적 권리인데 접근 불가능한 투표소는 장애인의 선거권을 박탈할 수 있다는 점에서 투표소 및 기표대 접근성 충족률은 100%가 되어야 한다”라며 “인권위는 이에 대한 부분을 개선하도록 모니터링 결과 및 관련 내용을 선관위에 전달하고 12월 19일 대선에 반영될 수 있도록 협의 중”이라고 전했다.

 

이어 권 씨는 권고사항을 해당 시설에 했을 때 “‘입구에 점자안내판, 음성안내판 전부 다 설치해야 하나요?’라는 질문을 굉장히 많이 받았다”라며 “이 모든 것들을 도구적으로 설치하려 하지 말고 자신이 시각장애인이 되었다는 생각으로 시각장애인이 전체 구조물 안내를 알 수 있도록 설치하면 된다”라고 밝혔다.

 

편의시설에 대한 기계적 설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당사자의 관점에서 바라보며 설치의 목적을 잃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법에 따른 ‘기계적’ 편의제공은 지양되어야

 

장애인 의료기관 이용 모니터링은 5월 한 달간, 종합병원 56곳, 한방병원 37곳, 요양병원 35곳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총 140명 참가 중 장애인 참가비율은 약 66.4%였다.

 

 

의료기관 이용 모니터링에서는 시각장애인을 위한 접근성과 편의제공이 상당히 미흡한 것으로 나타났다.

 

권 씨는 “시각장애인을 위한 주 출입구 점형 블록과 점자안내판 설치, 휠체어 이용 장애인을 위한 적정 접수대 설치가 미흡했다”라며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자료 및 확대 문서 제공은 25.9%, 청각장애인을 위한 수화 통역 및 화상 전화서비스는 27.4%만 병원에서 제공하고 있었다”라고 지적했다.

 

권 씨는 의료기관 누리집 정보 접근성에 대해서도 “시각장애인이 누리집을 통해 진료예약이 가능한 경우는 모니터링 대상병원의 1/5에 불과해 비장애인이 손쉽게 이용할 수 있는 누리집 사전예약이 시각장애인에게는 상당한 제약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라고 지적했다.

 

권 씨는 “어느 의료병원에서 권고사항에 대한 회신이 왔는데 원무과 전 직원이 수화통역을 배운다고 한다”라며 “그러나 농아인들이 바라는 정당한 편의제공이란 직원들이 수화로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하는 것이 아니라 진료가 있을 때 그에 관한 내용을 들을 수 있도록 수화통역을 지원해달라는 것이다. 이를 위해 병원이 인근 수화센터 연락처를 갖춰 수화통역 요청이 있을 때 바로 연결하는 방법도 고려해볼 수 있다.”라고 제안했다.

 

권 씨는 “장차법이란 장애인이 특별한 존재라서 법에서 요구하는 모든 것을 다 들어달라는 게 아니라 비장애인처럼 정당한 편의제공을 보장하라는 것”이라면서 정당한 편의제공에 대한 의료기관의 기계적 태도를 지적했다.

 

▲권미진 씨는 "모니터링 결과 시각장애인의 문화·예술시설 접근성과 편의제공이 매우 열악한 것으로 드러났다"라고 밝혔다.

 

시각장애인의 접근성과 편의제공 매우 열악해

 

장애인 문화·예술시설 이용 모니터링에서는 1천석 이상의 대규모 공연장 35곳, 사립대학박물관 33곳, 사립대학미술관 4곳이 모니터링 대상으로 선정됐다. 총 153명이 참가했으며 이 중 장애인 참가비율은 약 71%였다.

 

문화·예술시설 장애인접근성에서는 장애유형별로 불균형이 심했다. 권 씨는 “지체장애인을 위한 주 출입구 높이 및 너비, 장애인전용 주차구역, 엘리베이터 등 지체장애인의 접근성은 양호했다”라며 “그러나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형 블록 및 점자안내판 등은 매우 미흡해 시각장애인은 지체장애인보다 시설 접근성이 더욱 열악했다”라고 밝혔다.

 

시각장애인의 열악한 접근성은 문화·예술시설에서 제공하는 리플릿 등 장애인을 위한 정당한 편의제공과 누리집 정보 접근성에서도 나타났다.

 

권 씨는 “시각장애인을 고려한 점자 및 확대문자 등으로 만들어진 리플릿을 제공하는 문화·예술시설은 매우 저조했고 청각장애인을 위한 보청기를 미리 갖춰놓은 시설 역시 매우 적었다”라며 “반면 휠체어 이용 장애인을 고려한 지정석은 많은 편이었으나 지정석 외 좌석 착석을 허용하는 시설은 많지 않아 휠체어 이용 장애인은 본인이 원하는 장소에서 공연을 관람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라고 전했다.

 

또한 권 씨는 “시각장애인이 스스로 공연 예매를 할 수 있는 누리집은 거의 없었다”라고 덧붙였다.

 

모니터링 결과 발표 후에는 올 한해 모니터링에 대한 피드백과 함께 내년 모니터링 대상에 대한 제안이 쏟아졌다.

 

제주도에서 온 한 모니터링 단원은 “제주도가 관광지로 유명하지만 장애인이 관광하기에는 적절하지 않다”라며 “제주도는 저상버스 노선도 다양하지 않고 장애인콜택시도 전날 예약해야 이용 가능한 점 등 이동에 한계가 많다. 내년엔 제주도 관광지, 호텔, 대중교통 등에 대해 모니터링해 보완점을 찾아봤으면 한다”라고 밝혔다.

 

대전 지역의 박승현 모니터링 단원은 “주민센터 장애인화장실을 가보면 문이 닫혀 있거나 쓰레기장이 되어 있는 등 거의 이용할 수 없는 상태”라며 “내년에는 주민센터, 대형마트, 영화관 등 일상생활에 밀접한 곳을 모니터링 해봤으면 좋겠다”라고 제안했다.

 

사회복지사라고 밝힌 서울 모니터링 단원은 “장애인은 노동현장에서 많은 차별을 겪고 있다”라며 “직무배치, 채용 후 대우 등 장차법에 나와 있는 장애인의 고용문제에 대해 내년에 인권위에서 다뤄주길 바란다”라고 전했다.

 

이날 장차법 모니터링 보고회는 30여 명의 모니터링 단원이 참석한 가운데 두 시간여 동안 진행됐다.



 
강혜민 기자 skpebble@bemino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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