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6돌 한글날, '수화를 언어로 인정하라' 고사 지내
 
“수화는 국제장애인권리협약에서도 인정한 언어”
각 대선 후보와 정부에 “수화언어 법적 지위 보장!” 촉구

2012.10.09 20:35 입력

 

▲수화언어 권리 확보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가 566돌 한글날을 맞아 9일 이른 10시 광화문광장 세종대왕상 앞에서 세종대왕께 수화언어 법적 지위보장을 간청하는 고사를 지내고 있다. 왼쪽은 이날 수화통역을 맡은 종로구 수화통역센터 정원갑 사무국장.


 

“세종대왕이 백성을 어여삐 여겨 한글을 만든 지 올해로 566년이 됐습니다. 그런데 566년 동안 농아인들은 대한민국 백성이 아니었나 봅니다. 세종대왕이 어여삐 여기는 백성이 아니었나 봅니다. 566년은 농아인들이 건청인과의 소통에서 철저히 배제·소외된 역사였습니다. 이 나라 국가와 개인은 교육에 엄청난 돈을 퍼붓고 외국인들과 소통하기 위해 영어교육에 국가 전체가 몰입 재정을 쏟아 붓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땅에서 살아가는 농아인들을 위해서는 어떤 교육을 하고 있습니까? 몰입은커녕 최소한의 소통을 위한 교육도 안 하고 있습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박경석 상임공동대표)

 

2012년 10월 9일 한글날 566돌을 맞이했지만, 566년의 역사 속에서 배제된 사람들이 있다. 바로 수화를 언어로 사용하는 농아인들이다.

 

이러한 현실을 알리며 9일 이른 10시 수화언어 권리 확보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아래 수화언어권공대위)는 광화문광장 세종대왕상 앞에서 세종대왕에게 수화언어 법적 지위보장을 간청하는 고사를 지냈다.

 

또한 수화언어권공대위는 박근혜, 문재인, 안철수 대선후보와 정부에 수화언어가 한국어와 동일한 법적 지위를 가질 수 있도록 하는 수화언어 기본법 제정을 촉구했다.

 

이날 수화언어권공대위는 기자회견문에서 “이 나라는 청각장애인들에게 어릴 때부터 음성언어 배울 것을 강요할 뿐만 아니라 수화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억압한다”라면서 “수화에 대한 억압은 학교, 가정, 사회, 심지어 정부 정책에서도 드러난다”라고 비판했다.

 

수화언어권공대위는 “그러나 한글과 마찬가지로 수화도 훌륭한 언어라고 농아인들은 자부한다”라며 “수화를 억압하는 행태를 규탄하고 한국어와 동등한 언어로 수화가 법적 지위를 확보할 수 있도록 보장해달라”라고 요구했다.

 

장애인정보문화누리 김세식 회장은 “수화가 법적 지위를 가지지 못한 오늘의 현실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을 담아 고사를 지내며 이 마음이 하늘에 닿아 널리 퍼지길 바란다”라면서 “대선 후보들은 수화에 대한 인식 개선을 비롯해 수화 법적 지위 확보를 위한 공약을 만들고 정부는 이에 대한 제도를 만들라”라고 촉구했다.

 

▲장애인정보문화누리 김세식 회장은 “대선 후보들은 수화에 대한 인식 개선을 비롯해 수화 법적 지위 확보를 위한 공약을 만들고 정부는 이에 대한 제도를 만들라”라고 촉구했다.

 

한편 지난 5일 국회 국정감사에서는 전국 농아인특수학교 15개 학교 교사 중 수화통역 자격증을 취득한 사람은 전체 6%에 그치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에 대해 인권연대 장애와여성 마실 김광이 대표는 “수화통역자격증을 가진 6%의 교사들이 아무리 열심히 해도 나머지 94%의 교사 몫을 절대 채울 수 없다”라면서 “수화를 못하는 94%의 교사들이 아무리 진정성을 가지고 교육해도 자신이 가르치고자 하는 것을 어떻게 가르치며 농아인들의 다양한 욕구와 자아실현을 도울 수 있겠나”라고 꼬집었다.

 

김 대표는 “농학생들이 성인이 됐을 때 사회는 ‘장애인들은 부족해’라고 손가락질할 것인데 사회와 정부가 방기한 것은 묻어두고 개인에게만 책임과 원인을 돌릴 것인가”라면서 “어린 농학생이 성인이 되어서까지 차별받을 것을 생각하면 참담하다”라고 밝혔다.

 

이어 수화언어 법적 인정을 기원하는 고사를 지냈다. 고사는 강신, 참신, 초헌, 독촉, 첨작, 사신의 순으로 진행됐으며, 초헌관으로 분한 장애인정보문화누리 김세식 회장이 집전했다. 독촉문에는 세종대왕이 반포한 훈민정음 서문을 응용한 글에 수화언어권공대위가 쓴 독촉문을 덧붙였다.

 

< 독촉문 전문 >


 

* 해석 : 농인의 말(수화)이 한국어와 달라서 (비장애인과) 소통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 이런 이유로 농인들이 자신의 생각을 (비장애인들에게) 전달하고자 하나 충분히 전달을 못 하는 경우가 많다. 내 이를 안타깝게 여겨서 수화를 한국어의 (하나로) 만드니, 이는 농인들이 의사소통에 있어 평등한 지위를 가지게 하고 싶은 이유에서다.

 

서기 이천십이 년 시월 구일 수화언어권공대위 소속 장애인 일동은 세종대왕께 고하나이다. 현재 한국의 농인들은 수화로 교육받고 싶어도, 소통하고 싶어도 그렇지 못하는 실정입니다. 이에 세종대왕께서 백성의 언로(言路)를 열기 위하여 훈민정음을 반포하셨듯이 농인의 언로를 위하여 수화를 한국어의 하나로 인정하는 반포문을 내려주시옵소서. 수화언어권공대위 소속 장애인들은 이러한 원을 담아 한글을 반포하신 날 세종대왕께 간절한 마음으로 간청하는 고사를 지내나이다.

     

- 서기 이천십이 년 시월 구일 한글날에

수화언어권공대위 장애인 일동

 

이어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박김영희 사무국장은 “최근 수화를 배우며 지화로 내 이름을 쓰면서 어렸을 적 처음 한글로 내 이름을 쓰며 느꼈던 기쁨을 새삼 다시 느낀다”라면서 “농아인들과 수화로 인사할 수 있게 됐는데 이름을 쓰고 누구와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되물었다.

 

박김 사무국장은 “그러나 거의 모든 건청인들이 수화를 이해할 수 없어 농아인들이 수화로 자기 이름을 알려줘도 알 수가 없다”라면서 “농아인들이 건청인들과 소통하며 이 사회 한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수화를 하나의 언어로 인정하라”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세종대왕상 앞에서 고사를 마친 수화언어권공대위는 이러한 뜻을 대선후보에게 전하기 위해 종로구에 있는 무소속 안철수 대선후보 선거 캠프로 이동했다.

 

면담 자리에서 장애인정보문화누리 안세준 이사는 “안철수 후보가 대선후보 기자회견에 수화통역사를 배치했는데 일회성 이벤트로 보인다”라면서 “그러한 행보가 진심이라면 캠프에 상시 수화통역사를 배치하라”라고 전했다.

 

인권연대 장애와여성 마실 김광이 대표는 “수화는 국제장애인권리협약에서도 하나의 언어로 인정한 언어”라면서 “영화 도가니에서 나왔듯 농아인 특수학교에 다닌 사람들이 한글을 모른다는 것은 농아인들 교육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음을 나타낸다”라고 밝혔다.

 

이날 면담에 참여한 안철수 대선후보 선거 캠프의 박인복 민원실장은 “실질적 대안을 만들 수 있도록 구체적 정책건의안을 달라”라면서 “전문가들을 초청해 포럼을 열어 제도에 녹여낼 수 있도록 하겠다”라고 답했다. 
 

지난 6월 14일 출범한 수화언어권공대위는 △공인된 언어로서 수화의 법적 지위 확보 △수화를 일반학교 제2언어로 채택 △특수교육 관련 5개년 계획에 수화의 법적 지위 보장 마련 △농교육 근본적 개선 △수화언어 확산 등을 촉구하며 활동하고 있다.

 

▲안철수 대선후보 선거 캠프에서 수화언어권공대위가 면담을 하고 있다.

 

 

▲세종대왕상 앞에서 초헌관으로 분한 장애인정보문화누리 김세식 회장이 고사를 집전했다.

 

▲고사 지내는 장애인정보문화누리 김세식 회장.

 

▲수화언어 법적 인정을 기원하는 고사를 지내며 참가자들이 묵례하고 있다.

 

▲"수화 교과목을 제2외국어로 지정하라!"

 

 

▲장애인정보문화누리 안세준 이사가 기자회견문을 수화로 낭독하고 있다.



 
강혜민 기자 skpebble@bemino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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