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 교황님, 우리를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꽃동네 살다가 탈시설한 장애인들, 교황 꽃동네 방문 ‘결사반대’
꽃동네 방문은 ‘유엔 장애인권리협약’ 정면으로 위배하는 것

2014.08.06 19:04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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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황의 꽃동네 방문을 반대하는 꽃동네 거주 탈시설 장애인의 모임’ 및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6일 늦은 3시 명동성당 앞에서 교황 꽃동네 방문 반대 기자회견을 열었다.

 

 

교황의 꽃동네 방문 소식에 꽃동네에서 살다가 나온 장애인들이 거세게 반발하며 방문 취소를 요구하고 있다. 이들은 꽃동네에서의 참혹했던 시간을 이야기하며 교황의 꽃동네 방문을 규탄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꽃동네 방문을 반대하는 꽃동네 거주 탈시설 장애인의 모임’ 및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전장연)는 6일 늦은 3시 명동성당 앞에서 교황 꽃동네 방문 반대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날 전장연 등은 명동성당 앞에 천막농성을 시작하려 했으나 경찰의 원천봉쇄로 농성장은 설치되지 못했다.

 

 

인천 민들레장애인야학의 유명자 씨는 26년 동안 꽃동네서 살다 지난 2008년 시설에서 나왔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유 씨는 “꽃동네에 정말 가기 싫었지만 갈 데가 없어서 가게 됐다”라며 “수녀님이 바뀌기 전엔 가족이 면회 오거나 근처에 있는 공원 정도만 나갈 수 있었다. 공원도 부탁해야 겨우 나갈 수 있었다.”라면서 자유가 박탈된 시설 내의 삶을 증언했다.

 

 

유 씨는 “어느 날은 (시설 내 한 관계자가) 내가 남자랑 겨우 몇 마디 한 것에 대해 그 남자 좋아하느냐, 뽀뽀했느냐, 그것도 했느냐 라면서 내 휠체어를 빼앗아 갔다. 내 말을 듣지도 않고 소문만으로 날 오해했다. 억울했다.”라고 밝혔다.

 

 

시설에서 나와 자립생활한 지 6년째에 접어든 유 씨는 “시설에서 안 나왔으면 답답하게 살다 죽었을 것”이라며 “교황님이 광화문역 농성장에 와서 우리가 왜 집회를 하는지,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직접 들어주었으면 좋겠다”라고 강조했다.

 

 

유 씨의 탈시설을 지원한 민들레장애인야학 박길연 교장은 “처음 꽃동네에서 유 씨를 만났을 때 유 씨는 ‘그게 아니라’는 말만 반복했다. 그 말만 할 줄 아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그곳에선 누구도 유 씨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았기에 그 말만 했던 것”이라며 “그러한 유 씨가 시설에서 나올 땐 ‘내가 죽어도 다신 여긴 안 오겠다’라는 강력한 의견을 밝혔다”라고 전했다.

 

 

박 교장은 “날이 더워 유 씨의 활동보조인이 창문을 열고 퇴근한 날이었다. 비 오는 밤이었는데 활동보조인이 퇴근한 뒤 창문을 닫아줄 사람이 없어 유 씨는 밤새 그 비를 맞을 수밖에 없었다.”라며 “그러나 유 씨는 그날이 행복했다고 한다. 그 흔한 비마저 맞아본 적 없었고 밤새 비를 맞더라도 이것이 자유가 있는 삶이라는 것”이라고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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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동네에서 20년 넘게 살다 지역사회에서 자립생활을 하고 있는 유명자 씨와 김홍기 씨(왼쪽에서부터)

 

 

꽃동네에서 25년간 살다가 나온 김홍기 씨는 “2년 반 전 시설에서 나왔다. 그곳은 자유가 없었다. 힘들지만 결국 나올 수밖에 없었다.”라면서 “시설에서 나오고 나서야 나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그게 행복이었다.”라고 소회를 밝혔다.

 

 

상상행동 장애와 여성 마실 김광이 대표는 “나 역시 시설 생활을 해봤다. 손님이 오면 밝은 웃음으로 마당에 나가 맞이해야 한다. 나가기 싫어도 나가야 했다.”라며 “시설은 장애인을 시혜와 동정의 대상으로 만들고 장애인이 자신의 목소리라도 내면 그것은 은혜에 보답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한다.”라고 지적했다.

 

 

김 대표는 “시설에서 살고 그 안에서 교회를 다니면 신부 말이 옳은 줄 알고 살게 된다. 거기서 한 사람의 주체적 생각은 삭제된다.”라며 “장애인도 인간이다. 우리도 명동 거리를 자유롭게 다니고, ‘얻어먹는 삶’이 아닌 이 사회에서 당당히 살아갈 수 있도록 보장하라.”라고 강조했다.  

 

 

인권재단 사람 이일영 이사장은 “시설의 시대는 끝났다. 장애인도 시설에서 나와 독립적으로 살 수 있도록 국가가 보장해야 한다.”라고 강조하며, 교황의 꽃동네 시설 방문에 대해 반대 의사를 밝혔다.  

 

 

전장연 박경석 상임공동대표는 “한국은 2008년에 장애인차별금지법(아래 장차법), 2009년엔 유엔 장애인권리협약을 비준했다. 장애인의 완전한 사회 참여와 선택을 존중해 지역사회에서 살아가는 인권의 흐름에 대해 국가가 약속한 것”이라며 “그러나 교황의 꽃동네 방문은 장차법과 유엔 협약을 정면으로 위반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 상임공동대표는 “교황이 꽃동네에 간다면 이는 장애인에게 시혜와 동정의 거짓 사랑을 베푸는 것”이라면서 “또한 지역사회에서 살아가고자 하는 장애인의 노력을 철저히 무시하고 이제까지의 우리 노력을 좌절하게 하는 것”이라고 질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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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한 전달을 경찰이 막아서자 장애인들이 이에 항의하고 있다.

 

 

참가자들은 기자회견을 마친 뒤 교황의 꽃동네 방문 취소 요청 등이 담긴 서한을 염수정 추기경에서 전달하려고 했으나 경찰의 방패에 막혀 결국 전달하지 못했다. 이 과정에서 경찰의 무리한 진압으로 전동휠체어가 뒤집어질 뻔한 상황이 이어지는 등 폭우 속에서 경찰과의 격렬한 대치가 두 시간 가까이 이어졌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관계자가 “사전에 미리 연락해서 온 것이 아니니 추기경과의 만남은 어렵다. 나에게 주면 전달하겠다.”라고 하였으나 전장연 측은 “추기경님을 직접 만나 전달하고 싶다”라고 밝히며 서한을 전달하지 않았다.

 

한편 전장연 등은 이날부터 명동성당 앞에서 천막농성을 진행할 예정이었으나 경찰의 원천봉쇄로 농성장을 설치하지 못했으며, 이후 광화문 세월호 농성장 옆에 교황 꽃동네 방문 반대 농성장을 설치할 예정이다.

 

 

전장연은 7일 이른 11시,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교황의 꽃동네 방문은 장차법과 유엔 협약에 위반되므로 방문 취소를 요청한다는 내용의 진정을 접수할 예정이다.

 

 

유명자 씨의 증언록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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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자 씨. 유 씨는 꽃동네 시설에서 26년 살다 지난 2008년 지역사회에서 자립생활을 시작했다.
꽃동네를 정말 가기 싫었는데 갈 데가 없어서 가게 됐어요. 꽃동네에 살아봤는데, 자유롭지 못해요. 꽃동네는 주변이 다 산이라서 슈퍼 한 번을 갈래도 멀리 나가야 해요. 수녀님이 바뀌기 전에는 가족이 면회 오거나 근처에 있는 공원 정도만 나갈 수 있었어요. 그렇게 공원을 나갈 때도 부탁을 해야 겨우 나갈 수 있었어요.


수녀님이 바뀌고 나서 나한테 놀러 나가볼래? 그렇게 물어봐 줘서 처음으로 제주도에 갔어요. 그때 바다를 처음 봤어요. 저는 그나마 운이 좋았던 몇몇 사람 중의 하나였어요. 바다를 봐서 정말 행복했지만 다시 돌아갈 생각을 하니 너무 싫었어요. 시설에 돌아가지 않고 계속 이렇게 살고 싶었어요.


지금은 바뀌었겠지만 시설 안에서 바자회 같은 걸 했는데 티 하나 살 때도 컵 하나 살 때도 비장애인 도우미를 통해서 해야 해요. 내 이야기를 항상 누군가를 통해서 해야 했어요. 대부분 내 말을 진득하게 들어주지 않았어요.


어떤 날은 남자랑 겨우 몇 마디 했다고 그 남자 좋아하느냐고, 뽀뽀했냐고, 그것도 했느냐고. 그렇게 말하면서 내 휠체어를 뺏어갔어요. 실제로 하지도 않았는데 소문들은 걸로 나를 오해하고 내 말을 안 들어주니 너무너무 억울했어요.


민들레(장애인야학)는 제가 처음 나와서 살고 있는 곳이에요. 여기 안 나왔으면 어떻게 살았을까 싶어요. 아마 답답하게 살다 죽었을 거예요. 마트도 가고, 머리염색도 하고, 나를 꾸밀 수 있어요. 좋은 활동보조인도 만나고 대표님도 만나고 텔레비전으로만 보던 수미도 만났어요. 다운이도 만났어요. 안 나왔음 어떻게 만났겠어요.


교황님! 교황님이 (광화문)농성장에 오래 있으면서 우리 이야기를 들어주셨으면 좋겠어요. 우리가 왜 집회하는지. 우리한테 무엇이 필요한지 직접 들어줬으면 좋겠어요. 처음 집회 나왔을 때 경찰한테 팔이 꺾였어요. 집회 나왔을 때 경찰이 안 막았으면 좋겠어요. 위에서 막으라고 시키니까 나오는 건데 안 다치게 했으면 좋겠어요. 활동보조서비스 못 받는 사람들 활동보조서비스 시간 적은 사람들, 활보 시간 밤까지 늘어나서 더 이상은 안 죽게, 활동보조인들이 쭉 근무할 수 있게, 더 이상 저 같은 중증장애인들이 안 죽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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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동네 방문 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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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회견 뒤 교황의 꽃동네 방문에 대한 문제를 담은 서한을 염수정 추기경에서 전달하려고 했으나 경찰의 방패에 막혀 결국 전달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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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이 서한 전달을 막아서자 장애인 활동가들이 이에 항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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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장연 박경석 상임공동대표가 염수정 추기경에게 전달할 서한을 성당 측을 향해 들어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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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들의 성당 진입을 막아선 경찰들.

 

 



강혜민 기자 skpebble@bemino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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