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리꾼 여러분, 꽃동네가 아름다워 보이시나요?
 

누리꾼이 꼭 알아야 할 ‘교황이 꽃동네에 가서는 안 되는 이유’
“꽃동네는 열악한 한국 장애인 복지의 민망한 쌩얼!”

2014.08.11 22:32 입력

 

25년 만에 다시 찾아온 교황의 방한을 앞두고 온 나라가 들떠 있지만, 교황의 방한이 마냥 기쁘지만은 않은 사람들도 있습니다. 바로 교황의 방한 일정 중에 장애인 수용시설인 ‘꽃동네’ 방문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인데요. 이 때문에 몇몇 장애인단체는 지난 한주, 광화문과 명동성당, 그리고 국가인권위원회 등을 찾아다니며 “교황님, 꽃동네에 가지 마세요!”라고 외쳤습니다.

 

이런 장애인계의 움직임에 대한 여론의 관심도 꽤 높아서, 이를 보도한 '미디어오늘'의 기사 <꽃동네 26년 거주자 "교황님 저를 밟고 꽃동네에 가세요">는 포털사이트 ‘다음’의 메인 페이지에 게시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댓글들의 반응이 심상치 않습니다. 물론 ‘악플이 무플보다 낫다’라고는 하지만, 악플 치고는 강도가 꽤 셉니다. 그중에는 “교황이 방한하시는 걸 싫어하고 폄하하려는 무리들의 소행”이라거나, “꽃동네가 받는 예산을 탐내는 다른 세력의 계산이 숨어 있다”라는 식의 음모론까지 횡행했습니다.

 

그래서 누리꾼들의 각종 오해를 풀어 드리고, ‘꽃동네’로 대표되는 장애인 수용시설의 문제점을 알리고자 편지를 썼습니다. 아래의 글은 ‘프란치스코 교황의 꽃동네 방문을 반대하는 꽃동네 거주 탈시설 장애인 모임’과 함께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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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의 꽃동네 방문을 반대하는 장애인 활동가들의 퍼포먼스

 

누리꾼 여러분, 안녕하세요? 여러분의 댓글은 잘 보았습니다. 여러분의 댓글을 보면서 평소 시민들이 장애인 시설 문제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잘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적지 않은 댓글들이 여전히 장애인 시설에 대한 많은 오해와 편견 속에 쓰였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제일 먼저 눈에 띈 댓글은 다소 객관적으로 상황을 보시려 하는 듯한 아래와 같은 글이었습니다.

 

“야박하게 들리겠지만, 국내 장애우 수용시설의 목표는 ‘인간답게’라기 보다 ‘안전히 생을 유지’하는 거다. 아직까지 이 나라의 현실적인 최선은 그 수준인 것이고, 100을 주지 못하고 20만 줬다고 잘못된 거라 말하는 건 무슨 경우인가?”

 

'장애우'라는 표현은 일단 논외로 하고, 그래도 시설 안에서의 삶이 인간다운 삶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하시는 분이 있어서 반가웠습니다. 이는 시설 안에서의 삶은 그저 ‘안전히 생을 유지하는 것’, ‘그저 목숨만 부지하고 사는 것’에 불과했다고 말하는 많은 탈시설 장애인 동료들의 증언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 분은 그게 우리나라 현실에서 최선이니 그 수준에서 만족해야 한다고 강변하십니다. 인간으로 태어나서 인간다운 삶을 요구하는 게 왜 잘못된 것인지 저희는 잘 이해하지 못하겠습니다. 인간이 인간답게 살지 못하고 그저 짐승처럼 목숨만 부지하는 삶이라면 ‘20을 보장’받는 게 아니라 인간 ‘이하’의 삶, 즉 ‘마이너스의 삶’을 살아온 것 아닙니까?

 

복지부 통계를 보면, 우리나라의 장애인생활시설에서 사는 장애인은 2012년 말 기준으로 총 3만 640명에 달한다고 합니다. 이는 법인운영 시설만을 집계한 통계이니 각종 미신고 시설·개인운영시설에 거주하는 수까지 포함하면 훨씬 더 많은 장애인이 시설 생활을 하고 있을 것입니다. 이 많은 사람이 모두 인간 ‘이하’의 삶, ‘마이너스’의 삶을 살고 있다면 그것이 현실적인 최선이라고 인정하고 말 것이 아니라, 그들이 최소한 ‘인간의 삶’은 살도록 바꾸는 게 옳은 것 아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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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님, 꽃동네 오지 마세요"라고 외치는 장애인들의 기자회견을 보도한 기사에 달린 비난성 댓글들.

 

시설, 그것은 열악한 한국 장애인 복지의 쌩얼!

 

그 외의 많은 댓글은 국가와 사회, 그리고 가족도 버린 장애인들을 보살펴 준 시설에 대해 너무 함부로 말하는 것 아니냐는 식의 내용이었습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죠.

 

“살벌한 80년대부터 국가와 사회가 버린 사람들을 후원자 독지가의 돈을 모아 최선을 다해 운영해 온 우리나라 장애인 복지의 산증인 같은 시설인데, 지금은 너무 비대해졌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이런 식으로 흠집내기 하는 것은...”

 

그러니까 이 분의 말씀은 인권과 복지의 암흑기와 같았던 80년대, 그나마 꽃동네 같은 곳이라도 있었으니 장애인들이 목숨 부지라도 하고 살 수 있었던 것 아니냐는 얘기인데요. 그러나 꽃동네는 암흑기와 같은 80년대의 구원자가 아니라 열악한 한국 장애인 복지의 민망한 ‘쌩얼’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우리나라는 일제 식민지와 한국전쟁 등을 거치며 이후 공적 복지제도가 거의 전무했고, 외국 선교사들이 운영하던 구호시설을 주로 국내 종교인들이 넘겨받아 운영하던 것이 거의 유일한 복지였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수십 년이 지나도 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살기 위한 제도와 시스템을 만들기보다는 기존의 구호시설의 형태를 유지해 왔습니다.

 

그런 와중에 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전두환 정권이 갑자기 내놓은 것이 ‘복지국가구현’이었습니다. 화려하게 등장한 구호였지만, 전두환 정권이 구현하려는 ‘복지국가’는 실상 각종 부랑인을 ‘사회악’이라는 이름으로 낙인찍고 지역사회로부터 격리시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들 중 일부는 ‘사회정화’라는 이름으로 삼청교육대로 끌려갔고, 영문도 모른 채 형제복지원에 수용되었으며, 60%에 달하는 ‘심신장애자’는 정부에 의해 “종류별로 분리하여 각기 전문재활시설에 수용”(보건사회부, 1982년)되었습니다.

 

즉 80년대에 꽃동네와 같은 시설이 있었기에 그나마 장애인 목숨 부지라도 할 수 있었던 게 아니라, 꽃동네 같은 시설로 장애인을 내모는 것을 ‘복지’로 치장한 채 ‘복지국가’가 당연히 해야 할 책무를 회피한 것입니다.

 

그런 정책이 이어져 온 결과가 ‘도가니’로 알려진 광주 인화원 사태이고, 지금도 포털 사이트를 조금만 검색하면 볼 수 있듯이, ‘○○판 도가니’, ‘△△판 도가니’ 같은 식으로 이곳저곳 시설에서 장애인 인권 침해가 지속되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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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동네 방문 NO!", "우리 함께 살아요"

 

아름다운 곳 ‘꽃동네’, 그럼 여러분이 들어가 사시렵니까?

 

물론, 모든 장애인 생활시설에서 장애인 학대, 폭력, 인권유린 등이 자행되고 있다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저희는 적지 않는 장애인 생활시설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헌신적으로 ‘봉사’하며 최선을 다하고 있는 시설 종사자도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래서인지, 스스로 꽃동네 근무자라고 밝히신 한 분이 이런 댓글을 남겨주셨습니다.

 

꽃동네 근무자입니다. 몇 자 적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홍보요원은 아닙니다.
1. 제가 근무하는 곳은 생긴지 얼마 안되어 6인 1실로 건축되었습니다. 그것도 최근 규정이 바뀌어 5인 1실로 바꾸려고 노력 중인 걸로 알고 있습니다. (…)
3. 꽃동네가 아니더라도 장애인시설은 1년에 1번 정도는 모든 가족과 직원이 캠핑을 갑니다. 저희는 작년에 고성가서 바다구경했고 올해 제주도 가려다 세월호 사건 때문에 캠핑 자체를 취소했습니다.
4. 요즘은 장애인시설 최저기준이 도입되어 기준에 맞추려 합니다. 전에는 시설 내 직원 봉사자가 머리 깎던 것을 외부 미용실 이용합니다.

 

꽃동네가 거주인에게 좋은 환경과 서비스를 제공하려고 노력한다는 사실을 전하려 하시는 것 같습니다. 저희는 그 노력을 폄하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러나 이 분의 노력이 아무리 크고 훌륭하더라도 시설이라는 구조에서 절대 실현될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거주인의 ‘자기결정권’입니다.

 

사람은 나이를 먹어가면서 자연스럽게 자기 인생의 진로를 정하고 그것을 위해서 하루하루 자신의 삶을 선택해 나가야 하는 존재입니다. 장애인도 이런 ‘자기결정’의 삶을 꾸려갈 수 있도록 사회적 지원 정책을 펴는 것이 바람직한 사회의 모습이고, 많은 선진국도 이러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꽃동네의 시설이 아무리 좋아진다 한들, 어떤 집에서 살지, 어디로 여행을 갈지, 어디서 머리를 깎을지… 이러한 것들에 거주인 자신의 자기결정이 반영된 것이 있는지요? 이 모든 것을 시설에서 정해준 대로, 하루하루 주어지는 대로 살아왔던 것 아닌가요? 아래는 모두 꽃동네에서 살다가 탈시설 한 이들의 증언입니다.

 

“서른일곱 해의 세월 중 스무 해가량을 시설에서 살았다. 시설은 새벽 5시에 일어나 아침밥을 먹고 11시 반에 점심을, 4시 반에 저녁을 먹는 곳이었다. 똑같은 시간대에 똑같은 삶, ‘오늘이 어제 같고 내일이 오늘 같은’ 곳이었다.” (윤국진)

 

“10년 전 제가 중증뇌성마비장애인으로서 지역사회로 나가서 자립생활을 하려고 하니, 저보고 정신과 상담을 받아보아야 한다고 하더군요.” (배덕민)

 

다소 감정적일 수도 있겠지만, 그냥 이렇게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꽃동네라는 시설이 그렇게 훌륭하고 아름다운 곳이라면, 아니 그럭저럭 살만한 곳이라면, 댓글을 다신 분들이 그곳에 가서 사시렵니까? 인간다운 삶의 가장 기본적인 조건인 ‘자기결정권’을 보장받지 못한 공간에서 어떤 이는 5~6년을, 또 어떤 이는 20~30년을, 또 어떤 이는 평생을 살아갑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말하는 그 아름다운 곳에서 살다가 나온 사람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춥고 배고픈 것보다 더 슬픈 건 내가 짐승이 되어가는 기분이었다.”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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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는 100만 명의 장애인을 가스실에서 죽였습니다. '오늘날의 히틀러' 시스템은 장애인을 사회로부터 분리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런 시스템에 축복을 전하고자 하십니까?"라고 적힌 영문 현수막.

 

“교황의 방한을 폄하하려는 무리”라니요?

 

여기까지는 사실, 어느 정도 예상 가능한 반응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래의 댓글들은 정말 상상도 못한 것이었습니다.

 

“교황이 방문하시는 걸 싫어하고 폄하하려는 무리가 있다. 그들이 이렇게 뒤에서 조종하며 부추기고 있는 것 같다. 언론에 띄우며. 바로 (교황과) 세월호 희생자 가족 만남을 싫어하는 무리들.”

 

교황의 꽃동네 방문을 반대한다고 교황의 방한 자체를 반대하는 것은 전혀 사실이 아닙니다. 게다가 교황과 세월호 희생자 가족의 만남을 싫어한다니요.

 

얼마 전 광화문 인근에서 자신들의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 농성을 벌이며 싸우고 있는 세월호 유가족, 노동자, 장애인들이 함께 모여 “교황님, 낮은 데로 임하소서”라고 호소하는 기자회견을 열었습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교황이 꽃동네가 아니라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를 요구하는 농성장에 와 주실 것을 호소하는 장애인들과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는 유가족들이 함께했다는 사실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교황의 꽃동네 방문을 반대하는 이들도 프란치스코 교황이 전 세계에 준 감동의 메시지와 진보적인 행보가 이 땅에도 전해지길 바라고 있습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프란치스코 교황의 뜻이 온전히 전해지기 위해서라도 교황의 꽃동네 방문은 안 된다는 것입니다.

 

저희는 오히려 누군가가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한국의 장애인들이 꽃동네와 같은 시설에 갇혀 살아야 하는 실상이 전해지지 않도록 정보를 차단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습니다. 이미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함세웅 신부도 “꽃동네는 가톨릭 사회복지 정신을 따르는 공동체가 아니라 일종의 큰 강제수용소 모형”이라며 “이는 18세기 수준의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며, 유엔 장애인권리협약에도 어긋난다”라고 지적하신 바 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일전에 “신부가 가난한 이에게 빵을 주면 훌륭하다고 칭찬을 듣지만, 그가 왜 가난한 것인지 사회구조에 대해 이야기하면 빨갱이라는 비난을 듣게 된다”라고 말씀하신 바 있습니다. 가난한 이에게 단지 시혜와 동정만을 베풀며 잘못된 사회구조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 수도자들의 잘못된 태도를 질타하는 따끔한 지적입니다.

 

반면, 꽃동네의 설립자 오웅진 신부는 언제나 “빌어먹을 힘만 있어도 주님의 은총입니다”라고 말합니다. 이는 행동하는 교회, 거리의 교회, 불평등에 맞서는 교회를 강조해 오신 프란치스코 교황의 말씀과는 너무나 거리가 먼 이야기라 생각합니다.

 

저희는 누구보다도 프란치스코 교황이 전하는 화해와 사랑, 평화의 메시지가 이 땅에도 전해지길 바랍니다. 그렇기에 더더욱 꽃동네는 안됩니다. 교황께서 장애인의 인간다운 권리를 거세한 땅 위에 세워진 거대 ‘수용’시설이 아니라 당당하게 지역사회에서 삶을 살아가고자 분투하는 장애인들의 손을 잡아주셔야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하금철 기자 rollingstone@bemino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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