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시설에서 형식적인 결혼하고 싶지 않았어요"

장애인 시설 인권유린 시달리다 자립한 장애인 연인, 21일 결혼

2014.10.24 18:16
 

시설 내에서 인권유린에 시달리던 지적장애인 연인들이 탈시설 1년 6개월 만에 결혼식을 올렸다. 강제노동 등으로 작년에 폐쇄된 전북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생활시설에서 나온 지적장애인 A(남, 47)씨와 B(여, 34)씨가 지난 10월 21일 전주시 덕진구 한 예식장에서 지역사회의 축복 속에 결혼식을 올렸다. 


<관련 기사 - http://cham-sori.net/news/258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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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유린이 자행되던 전북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생활시설에서 만난 지적장애인 연인이 지난 10월 21일 전주시에서 결혼했다. 시설이 폐쇄되고 1년 6개월 만이다. <사진 제공 - 전주장애인가족지원센터> 


"시설에서 형식적인 결혼 하고 싶지 않았다"


강제노동과 성폭력 등 인권유린 실태가 발각되어 작년 5월 폐쇄된 전북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에는 모두 30명의 장애인들이 거주하고 있었다. 이들의 생활은 처참했다. 연구소는 남성들은 멀리 제주도 농장까지 보내 강제 노동을 시켰고, 장애인들 사이에서 벌어진 성폭력도 은폐했다.


이곳에 거주하는 장애인들은 이미 강제노역, 폭력 등에 시달리다 SBS TV프로그램 ‘긴급출동 SOS’ 등을 통해 구조된 이들이다. 연구소는 겉으로는 상처받은 이들의 치유와 자립을 지원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이 시설에서 연인으로 발전한 이들도 있었다. 이번에 결혼한 A씨와 B씨가 대표적인 사례. 이들은 결혼을 원했지만, 시설은 이들의 결혼을 추진하지 않았다.


A씨는 “단지 사진 한 장 찍고 끝나는 결혼을 원치 않았다”면서 적극적으로 결혼 의사를 밝히지 않았다고 고백했다.


연구소는 5월 원장이 구속되면서 폐쇄됐다. 거주 장애인들은 전북 도내 몇 곳의 생활시설로 전원 조치가 이뤄졌다. A씨와 B씨도 진안의 한 생활시설로 옮겨졌다. 사실혼 관계에 있는 이들은 독립된 공간에서 함께 살아야 했지만, 도내 생활시설에서는 이들만을 위한 공간을 마련할 수 없는 구조였다. 


당시 이들의 전원 조치를 도운 김병용 전북장애인차별철폐연대 사무국장은 “생활시설은 거주인의 경우 결혼을 하면 독립된 공간을 마련하거나 여건을 만들어줘야 하는데, 한국사회 시설의 현실은 여력이 되지 않는다. 사실상 결혼은 불가능하다”면서 “그렇다보니 분리해서 수용할 수밖에 없었고, 이들의 경우에도 어려웠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결국, 이들은 진안의 생활시설에서 작년 여름에 나와 전주시에 따로 거처를 마련했다. A씨는 동료 장애인과 서신동의 한 임대아파트에 거주했고, B씨는 공동생활가정에서 다른 여성장애인들과 함께 거주했다. 함께 살 수 없다는 것은 고통이었다. B씨는 공동생활가정에서 자유롭게 남씨를 만날 수 없는 것이 힘들었다. 당연히 공동생활가정에서 적응하지 못했다. 


전주시와 민간단체 협력 속에 1년 6개월 만에 결혼 성공


결혼을 위해서는 함께 살아갈 집이 필요했다. 이들의 형편으로는 쉽지 않은 일. 전주시는 A씨의 생활공간을 마련하기 위해 LH공사 등에 협조를 적극적으로 요청했다. 그리고 전주시 아중리에 있는 한 원룸을 찾았다. A씨는 작년 겨울 그곳으로 이주했다.


이 과정에서 어려움도 있었다. A씨와 B씨에게는 오랫동안 연락이 끊어졌던 가족들이 있었다. 전주시는 A씨와 B씨가 장애우권익연구소에서 나왔던 작년 6월경, 가족들의 행방을 찾았다. 그리고 이 둘이 결혼을 원한다는 이야기와 함께 지역사회에서 민간단체들의 도움이 있다면 잘 살아갈 수 있다는 의사를 전달했다. 가족들은 논의 후 연락을 주겠다는 의견을 전주시에 전달했다.


하지만 그 후, 가족들과는 연락이 닿지 않았다. 전주시 김길례 장애인복지 담당자는 “충분히 설명을 드렸지만, 오랫동안 연락이 끊어져 있었고, 혹시 사고를 쳐서 연락을 하는 것은 아닌가라는 마음에 연락을 받지 않았던 것 같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2014년이 되고 1월 전주시장애인가족지원·인권센터 김정숙 대표가 B씨의 후견인 역할을 하면서 결혼 준비 작업이 탄력을 받기 시작했다. 김 대표는 “성인들이 자유의사를 가지고 결혼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A씨와 B씨는 비장애인들이 볼 때는 지적장애가 있어 보이지만, 생활하는데 있어 지역사회 도움이 있다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올해 2월 만들어진 전주장애인가족지원센터는 장애인 가족 중심의 복지서비스를 구축하는 일을 맡고 있으며, 전주시의 지원을 받고 있다. A씨와 B씨의 결혼은 가족지원센터에서 맡아서 준비했다.


다만, 민간단체 성격의 가족지원센터는 가족들의 반발 등 예기치 못한 일들이 벌어질 수 있다는 점에 대한 고민이 있었다. 전주시도 “법적으로 결혼에 문제는 없지만, 결혼 당사자들의 부모가 있고 논의 후 연락을 주겠다고 했는데 연락이 되지 않았다”면서 “가족지원센터 김 대표와 중증장애인자립생활지원센터(시설 장애인들의 자립을 돕는 단체) 강현석 대표에게 가족들은 직접 만나 동의를 구했으면 좋겠다고 부탁을 드렸다”고 말했다. 


이에 김 대표와 강 대표는 전주시로부터 가족들의 연락처를 받아 지난 5월에 만남을 가졌다. 두 대표는 적극적으로 설득했고, 가족들도 수용했다. 그리고 민간단체가 주도하는 결혼 추진이 법과 절차적으로 문제는 없는지 국민권익위원회에 자문을 구했다.


국민권익위는 “법률상 누구든지 장애 여부와 상관없이 자기 결정에 따라 혼인할 수 있으며, 발달장애인에 대해서는 국가와 지자체가 적절한 의사결정 및 지원방안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며 전주시에 계속 지원해 줄 것을 요청했다. 전주시도 국민권익위에 “전주시와 민간단체들이 지속적으로 이들을 지원하고 있는 상황이고, 이들에 대한 지원이 계속된다면 충분히 결혼 생활을 할 수 있을 것으로 사료된다”라는 의견을 전달했다.


절차와 법적 문제가 없다는 것이 확인되면서, A씨와 B씨는 7월 1일 혼인신고를 하고 3년 만에 함께 살게 됐다. 10월 21일, 결혼식은 전주시와 가족지원센터가 지역의 웨딩홀을 구해 진행됐다. 이날 결혼식에는 가족들도 찾아와 축하했다.


A씨와 B씨는 24일 기자와 만나는 동안 서로의 손을 놓지 않았다. 이들은 “결혼을 해서 기분이 너무 좋다. 앞으로 아이도 낳고 잘 살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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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렵게 결혼한 부부는 "잘 살고 싶다"는 소박한 바람을 전했다.


A씨는 11월부터 평화동 한 복지기관에서 일도 시작한다. B씨는 현재 가족지원센터가 운영하는 평생교육기관에서 컴퓨터 교육과 금전 관리 교육 등을 받고 있다.


“탈시설 장애인들의 자립을 돕는 체계적인 지원이 지역사회 마련되야 한다”


김 대표는 “가족지원센터가 만들어지고 처음으로 생활시설 장애인들의 탈시설과 자립을 도왔다”면서 “이 둘의 결혼과 자립이 모범이 되어 퍼졌으면 좋겠다”고 기대감을 드러냈다. 실제로 이들의 결혼을 보고 한 동료 장애인도 자립에 대한 의지가 커졌다고 말했다.


다만, 어려운 점은 있다. 김 대표는 “시설장애인들의 자립은 평생교육기관, 자립생활지원센터 등 체계가 안정되었을 때 가능하다”면서 “그러나 한국사회에서 이들 기관에 대한 지원이 넉넉하지 않다”고 말했다.


전주시는 내년부터 탈시설 장애인들이 지역사회에서 비장애인들과 함께 살 수 있도록 하는 정책들을 마련하겠다고 했다. 특히, 장애인들의 평생교육과 중증장애인들의 자립을 돕는 기관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병용 장애인차별철폐연대 사무국장은 “지적장애를 가졌다고, 보호자가 있다고 하더라도 성인 나이의 장애인이 결혼을 선택했기 때문에 이들의 욕구는 충족되어야 한다”면서 “이들이 안전하게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지속적인 사례지원에 관심 갖고 지자체가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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