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자체 예산 쥔 복지부, ‘활동보조 24시간’ 싹둑   

사회보장기본법 26조에 따라 복지부와 협의했더니 ‘중단’ 통보
장애인계 즉각 반발, “장애인 죽이겠다는 뜻인가!”

2015.04.03 22:13 입력

   

사회보장기본법 26조에 따라 지자체에서 최중증장애인에게 지원하려던 ‘활동보조 하루 24시간’ 계획이 무산되고 있다. 이에 따라 장애인 당사자들이 강하게 반발하면서 앞으로의 마찰이 불가피해 보인다.

 

사회보장기본법 26조는 국가와 지자체가 사회보장제도를 신설하거나 변경할 경우, 기존 제도와의 관계, 사회보장 전달체계와 재정 등에 미치는 영향 등을 사전에 충분히 검토하여 사회보장급여가 중복 또는 누락되지 않도록 하는 데 목표를 두고 있다. 따라서 제도를 신설하거나 변경할 경우, 변경의 타당성, 기존 제도와의 관계, 사회보장 전달체계에 미치는 영향 및 운영 방안에 대해 국가와 지자체는 서로 협의해야 한다. 협의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사회보장위원회가 이를 조정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문제는 이 조항이 최근 중앙정부가 지자체의 복지 확장에 ‘제동’을 거는 장치로 활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장애인계에선 지역사회에 사는 장애인의 자립생활을 보장하기 위해 지자체가 추가 지원하는 활동보조 시간에 복지부가 제동을 걸면서 이 문제가 대두했다. 현재 문제가 되는 26조를 포함한 ‘사회보장기본법 전부개정법률안’은 2011년 당시 한나라당 박근혜 의원이 대표발의한 것으로 이는 ‘박근혜 복지법’으로 불렸다. 개정안은 2013년 1월부터 시행됐다.

 

지자체 예산 칼자루 쥔 복지부, 지역 상황 고려 없이 “지원 안 돼”

 

현재 복지부가 지원하는 활동보조 시간으로는 중증장애인의 ‘생활시간’이 보장되지 않기 때문에 지자체가 시비를 편성해 중증장애인을 추가 지원하는 방식으로 활동지원서비스가 운영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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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새누리당 권영진 대구시장 후보가 420장애인차별철폐대구투쟁연대와 활동보조 24시간 보장 등의 내용을 담은 정책협약을 맺고 있는 모습.

 

이에 따라 지난해 대구시는 올해부터 최중증·독거장애인에게 활동보조 하루 24시간을 보장하기 위해 예산을 추가로 편성했는데, 복지부가 이는 ‘사회보장제도 변경’에 해당한다며 사회보장기본법 26조에 따라 협의하여 진행하라고 요청한 것이다. 그런데 최종적으로 복지부가 이를 ‘불수용처리’하면서 대구시의 활동보조 하루 24시간 지원 계획은 좌초됐다. 중앙에서 운영하는 활동지원서비스와 중복되며 지자체 재원의 지속가능성, 구체적 대상 선정 기준이 부재하다는 게 이유였다.

 

이에 대해 대구시는 하루 24시간의 활동지원서비스를 20시간으로 줄이고 나머지 4시간에 대해서는 문화바우처로 지급하는 변경안을 다시 제출했다. 사회보장기본법 26조에 따라 사회보장위원회 제도조정소위원회에서 다시 검토됐으나 이는 지난해 12월 9일 또 다시 불수용처리 됐다. 24시간 활동보조가 필요한 인공호흡기 사용 장애인과 배뇨 도움이 필요한 와상 장애인의 경우, 활동보조보다 응급안전서비스, 요양·간병서비스 지원이 더 적절하다는 것이 복지부 입장이다. 결국 대구시가 올해 1월부터 최중증·독거장애인에게 지원하려고 했던 활동보조 추가 시간은 여전히 지급되지 못하고 있다.

 

‘활동보조 하루 24시간’ 지원 대상을 단계적으로 확대하겠다는 계획은 지난 시장 선거에서 권영진 대구 시장의 공약이기도 했다. 그러나 대구시는 복지부의 ‘불수용 처리’로 시장 공약으로 내세웠던 것조차 지킬 수 없게 됐다. 이러한 상황에 대해 대구시 보건복지국 장애인복지과 담당자는 곤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윤정희 주무관은 “복지부는 응급안전서비스가 적절하다고 하나 호흡기 장애인, 와상장애인 등 최중증장애인 당사자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라면서 “활동보조인이 곁에 없을 때, 육체적으로도 힘들지만 정신적으로도 높은 불안감을 보인다. 호흡기나 도뇨관이 빠져 실제 사망에 이를 수도 있기 때문이다.”라며 현장 목소리를 전했다.

 

윤 주무관은 “(이러한 현장의 욕구와 달리) 복지부의 불수용 입장이 확고하여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암담하고 답답하다.”라면서 “다른 방법을 검토하고 있으나 방법이 보이지 않는다”라고 토로했다.

 

현재 대구의 최중증장애인은 복지부 지원으로 월 391시간, 대구시 지원으로 월 80시간을 최대로 받을 수 있다. 이는 하루 15시간가량 이용할 수 있는 양이다. 사지를 움직일 수 없는 와상장애인의 경우, 활동보조인 없이 하루 9시간을 홀로 지내야 한다.

 

대구 사람장애인자립생활센터 전근배 정책국장은 “사회보장기본법 취지는 지역적인 균등한 사회서비스 발전이나 실제 이는 ‘균등’이 아닌 ‘하향 평준화’다”라면서 “시비로 진행하는 사업인데 왜 복지부에서 관여하는지 모르겠다. 대구시 차원에서 풀 방법이 없어 답답하다”라며 난감해 했다. 

 

인천, 경북, 강원, 광주에서도 잇따라 ‘활동보조 24시간 중단’

 

이와 비슷한 상황이 인천에서도 발생했다. 인천시는 지난해 11월 사회보장기본법 26조를 알지 못해 복지부와 협의 없이 인천시 내 최중증장애인 3명에게 활동보조 24시간을 지원했다. 그러나 지난 2월 감사원 감사 결과, 복지부와 협의를 거쳐야 한다는 것을 알고 지난해 지원하던 3명을 포함한 10명분에 대한 협의안을 복지부에 올렸다. 지난 2월에 제출했지만 4월이 넘도록 복지부는 답이 없다. 결국 지난해에 지원하던 3명에 대해선 지속하여 지원하고 있으나 나머지 7명에 대해선 대상자 선정조차 못 하고 있다. 복지부 결정에 따라 3명에 대한 지원 여부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에 대해 인천 장애인자립선언 문종권 대표는 “중앙정부에 예산을 달라는 것도 아니고 지자체 순수 재정으로 하는 것인데 중앙에서 부당하게 막고 있다”라며 “사회보장기본법 26조 자체가 지방자치 행정의 취지에 맞지 않는다”라고 꼬집었다.

 

이렇게 사회보장기본법 26조가 지자체 행정권을 침해한다며 현장에선 목소리가 드높지만 정작 복지부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복지부 사회보장조정과 담당자는 “바라보는 방향이 다른 것 같다”라며 “관여하는 게 아니다. 사회보장급여가 중복, 편중, 누락되지 않도록 급여의 효과성을 제고하는 측면으로 협의·조정하고 있다”라고 응답했다.

 

이어 이 담당자는 “활동지원서비스는 이미 국가에서 지원하고 있으며, 응급 시 안전을 고려했을 때 응급안전서비스와 요양서비스를 지원하는 게 바람직하다”라고 밝혔다. 그러나 응급안전서비스는 도입 당시부터 활동지원서비스의 사각지대를 채우기 위한 근본적 대안이 될 수 없다며 장애인계의 비판을 받았던 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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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급안전서비스는 지난 2012년 활동보조가 없는 사이 발생한 화재로 사망한 고 김주영 씨의 사고 이후 복지부가 내놓은 대책 중 하나다. 그러나 응급안전서비스는 활동보조 사각지대에 대한 근본적 대안이 될 수 없다며 당시 장애인계는 비판했다. 화재가 발생한 고 김주영 씨의 집.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전장연)에 따르면 경북, 강원, 광주 지역에서도 사회보장기본법 26조에 따라 복지부와의 협의 과정에서 지자체 활동보조 추가 지원이 무산된 것으로 드러났다. 경북은 지난해 지역 장애인계와 주요 시·군별 최중증장애인 1명씩을 선발해 ‘활동보조 하루 24시간’을 실시하기로 합의했으나 복지부가 불수용처리하면서 시행되지 못했다. 강원도 역시 중증장애인에 대한 활동보조 지원이 지난해보다 6200만 원가량 증액 편성됐으나 복지부와의 협의에서 좌초됐다. 광주는 지난해 9월부터 최중증장애인 10명에게 활동보조 하루 24시간을 지원했으나 사회보장기본법 26조로 타 지역에서 잇따라 서비스가 중단되자 지속하여 시행하는 것을 부담스러워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복지부의 시행 방침이 타 지역의 복지 확대를 위축시키는 데 실제 영향을 미치고 있다.

 

반면 서울시의 경우, 올해부터 서울시 내 최중증장애인 100명에 대해 활동보조 24시간 지원을 시행하고 있다. 복지부와의 협의는 거치지 않았다. 이에 대해 서울시 장애인자립지원과 담당자는 “26조 2항의 시행령에 따르면 보건복지부 장관은 사회보장제도 신설 또는 변경과 관련해 협의 대상 기준, 절차 등 세부운용방안을 12월 31일까지 지자체에 통보하게 되어 있다”라면서 “그러나 지난해 복지부로부터 통보받은 바가 없어 시 자체 사업으로 시행하게 됐다”라고 밝혔다.

 

사회보장기본법 26조엔 중앙정부와의 협의를 의무화하고 있지만 협의하지 않아도 제지하거나 처벌할 수 있는 조항이 없다. 이에 대해 복지부 사회보장조정과 담당자는 “법이 있는데 안 한 게 문제지 한 곳이 문제 있는 건 아니다”라면서 “복지부는 협의를 요청할 뿐”이라고 응답했다. 그러나 이러한 복지부의 '일관성 없음'은 2일 열린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복지부 업무보고에서도 지적되었다.

 

장애인계, 긴급 기자회견 열어 “장애인을 죽이겠다는 뜻인가!”

 

지자체에서 사회보장기본법 26조로 ‘활동보조 하루 24시간’ 지원 계획이 잇따라 무산되자 장애인계는 즉각 반발에 나섰다. 전장연은 3일 오후 2시 정부 서울청사 앞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박근혜 정부와 복지부가 지방자치와 복지 확대를 무력화시키고 있다며 규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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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자체에서 사회보장기본법 26조로 ‘활동보조 하루 24시간’ 지원 계획이 잇따라 무산되자 장애인계는 즉각 반발에 나섰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3일 2시 정부 서울청사 앞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박근혜 정부와 복지부가 지방자치와 복지 확대를 무력화시키고 있다며 규탄했다.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양영희 회장은 “이는 지역사회에서의 장애인 자립생활을 저해하는 요소가 될 것”이라고 우려하며 “나에게 필요한 모든 서비스를 중앙정부가 전부 지원하는 게 아니다. 지자체는 지역에서 사는 장애인의 다양한 장애유형과 정도에 따라 서비스를 지원할 필요가 있다”라고 지적했다.

 

서울 송파에서 활동보조 24시간을 지원받고 있는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김준우 공동대표는 “지난해 근육병장애인이 활동보조 24시간을 지원해달라며 구청 앞에서 1인시위를 하다가 폐렴으로 입원했다. 그러나 구청은 해줄 수 없는 게 아무것도 없다고 했다.”라면서 “이런 상황에서 복지부가 지자체 예산을 줄이라고 한 것은 장애인을 죽이겠다는 뜻”이라고 울분을 터뜨렸다.

 

김 공동대표는 “송파에선 장애인뿐만 아니라 가난하다는 이유로 지난해 송파 세 모녀가 사망했다”라며 “또 다시 가난하고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목숨을 잃는 이가 나타날까 두렵다”라고 토로했다.

 

지난해 송파구에선 근육병장애인 오지석 씨가 활동보조가 없는 사이 호흡기가 빠져 사망한 사건이 발생했다. 오 씨는 어머니와 함께 산다는 이유로 최중증·독거장애인이 받을 수 있는 최대치 양의 활동지원서비스를 받을 수 없었다. 당시 오 씨가 받았던 활동지원 시간은 월 278시간으로 하루 10시간도 채 되지 않았다. 월 278시간 중 복지부 지원분은 118시간에 불과했고 서울시 지원분이 100시간, 송파구 지원분이 60시간이었다.

 

이렇게 서비스 사각지대로 사망하는 이들이 잇따름에도 지난 1일 정부는 국가정책조정회의에서 3조 원의 복지 재정을 절감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빈곤사회연대 김윤영 활동가는 “고빈곤·저복지 시대에 국민을 배반하는 일”이라며 “없는 복지재정을 졸라매서 빈곤층을 후려치겠다는 뜻”이라고 질타했다. 이어 “복지 누수가 문제인 것이 아니라 누락된 사람이 너무 많은 게 문제이며, 복지 사각지대가 너무 넓은 게 문제”라고 꼬집었다.

 

전장연 박경석 상임공동대표 또한 “복지부가 활동지원서비스와 응급알리미의 차이와 개념도 모르고 있는 건가”라고 질타하며 “이것이 바로 가난한 이에 대한 국가의 조직적 폭력이고 인권유린 아닌가. 복지라면서 우리의 생명을 빼앗아가는 박근혜 정부에 총투쟁하자”라고 결의했다.

 

최근 3년간 활동보조가 없는 사이 발생한 화재로 김주영, 송국현 씨 등 중증장애인의 사망이 잇따르면서 ‘활동보조 사각지대’가 사회적 문제로 떠올랐다. 이러한 사건들로 복지부는 활동보조 지원 대상을 1급에서 2급으로, 올해는 3급으로 확대하는 방침을 내놓았다. 즉, 확대에 대한 필요성을 중앙정부도 분명 인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를 확대하고 독려해야 할 중앙 정부가 사실상 이를 ‘저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서비스를 받고 있는 당사자들의 반발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강혜민 기자 skpebble@bemino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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