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과 건강의 사각지대, 활동보조서비스의 제공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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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체적인 투자와 진지한 노력과 결단 선행돼야

2012.11.26 16:58 입력

 
최근에 장애인들이 사고로 목숨을 잃는 사건이 이어지면서 장애인활동보조서비스의 양적인 확대의 필요성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그렇지만 실제로 이용당사자들에게 활동보조서비스가 어떠한 환경에서 어떻게 전달되고 있는지에 대한 관심은 아직 일어나지 않은 것 같다.
 
사회적 안전망이 거의 전혀 없다시피한 실로 열악한 환경 속에서 인간으로서 자유로운 삶을 살아가기 위해 목숨을 거는 이용당사자들 못지않게 그러한 현장에서 직접 들어가 일해야 하는 활동보조인들이 의지하는 것은 오직 자신의 ‘맨몸’ 하나뿐이다. 활동보조인은 서비스 제공현장에서 어떠한 제도적 지원도 받지 못하고 있다. 3D업종이라는 자조의 목소리가 들릴 정도로 열악한 활동보조인의 노동조건에 대해서는 제공기관도, 서비스이용당사자들도 이용자들의 긴급한 필요만을 내세우며,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는 것이 지금의 모습이다.

 
서비스의 제공 ‘당사자’임에도 서비스 제공과 관련된 모든 논의에서 당연하게 제외되며, 건강권과 인권마저 보장받지 못하는 것이 장애인복지 현장에서 활동보조서비스 제공인력이 직면한 현실이다. 이에 필자는 서비스 제공으로 인하여 몸이 아프게 된 한 명의 활동보조인으로서, 현장에서 그간 겪었던 경험을 중심으로 ‘제공인력’이 겪게 되는 어려움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이용자와 더불어 활동보조인이 처한 현실에 대한 관심과 이를 함께 개선하려는 노력들이 이루어질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활동보조인연대(준), 사회서비스시장화저지공동대책위원회가 11월 17일 한성대 에듀센터 교육실에서 연 ‘장애인 활동보조인 노동조건 및 건강실태 조사 보고·토론회’ 장면.

 
40시간 교육과정을 수료했지만, 서비스 이용자에 대한 아무런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정보도 받지 못하는 활동보조인은 현장에 투입되면서 엄청난 충격을 받게 된다. 장애인 당사자들의 긴급한 필요에 의해 마련된 배경으로 인하여, 몸적인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는 매우 예민한 근로조건임에도 중개기관은 활동보조인의 신체적 조건이나 건강상태와 원하는 활동이 무엇인가에는 관심도 두지 않고 오직 장애인 이용자의 필요에 따라 활보인의 시간이 맞기만 하면 무조건 연결을 시켜준다. 뿐만 아니라 교육과정에서 배운 가르침에 따라 나는 이용자의 필요에 의해 거의 무조건적으로 응해야 했다.

 
관절이 매우 약했던 신체적 조건이었지만, 내가 소개받았던 첫 번째 이용자는 뇌병변 1급 와상장애인이었다. 변기를 사용하거나 휠체어를 탈 때는 어떤 보조기구나 다른 사람의 도움도 없이 나 혼자의 힘으로 그분의 몸을 완전히 안아서 들어올려야 하는 상황이라는 것은 그분을 직접 만나고서야 알게 되었다. 그분을 활동보조하면서 목디스크가 생겨 어쩔 수 없이 그만두게 된 전임자의 사정은 아주 후에나 알게 된 사실이었다. 이용자는 “아니 왜 갑자기 목디스크가 생겼지?”라고 나에게 질문했지만. 일을 해보니 팔의 힘이 약하거나 근력이 약한 경우 잡아당겨야 하면 어쩔 수 없이 목에 힘을 주게 되어, 목의 통증은 무거운 사람을 반복적으로 들게 되었을 경우 어쩔 수 없이 겪게 되는 고통이었던 것이다.
 
하루에 두 번 이상 몸 전체를 들어 올리는 일은 시간으로 치면 찰나에 해당하지만 찰나에 들어가는 에너지는 정말 엄청난 것이었다. 활보 시간이 항상 부족했던 이용자는 분초를 다투며 다양한 서비스를 해야 했으며, 이용자의 필요에 맞추는 서비스를 제공해내는 알은 숨이 턱에까지 차오르는 육체적 고통과 힘듦이었다. 서비스 제공 시에는 느낄 수 없는 거대한 피로감과 근육의 무리가 회복되는데도 여러 날이 필요했다.

 
일반적으로 매우 열악한 환경 속에서 이용자의 필요가 더 우선시 되는 이 일의 성격으로 인해 활보인들은 그에 맞추기 위해서 이 일 자체를 그만둘 작정을 하지 않고서는 적절한 휴식과 회복을 위한 지원을 생각할 수조차 없다. 이토록 반복되는 악순환 속에 활보인의 체력은 소진되며 건강은 서서히 무너져 내리게 된다. 과로와 힘쓰느라 자주 흘리는 땀으로 인해 체온조절이 어려워 늘 감기를 몸에 달고 살아야 했고, 전에 없던 근육통과 관절의 염증에 시달려야 했다. 고통을 호소할 곳도 없었으며 고통을 덜기 위해 받을 수 있는 어떠한 지원도 없었다. 모든 것은 활보인 혼자, 혹은 이용자와 활보인 두 사람 사이에서만 개인적으로 해결해야 했다. 확실히 다쳤을 때에는 산재를 받을 수 있다고 들었지만, 산재를 받아보려고 다칠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것은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일인가?

 
제공기관은 듣기만 할 뿐 아파 쓰러지지만 않으면 이용자의 긴급한 필요와 대체인력 없는 열악한 상황을 먼저 내세우며, 쉬려고 해도 계속 서비스를 떠맡기려 한다. 내 경우 역시 쉬지 못하고 두 번째 이용자를 위한 서비스를 하다가 결국 오른쪽 어깨에 일시적 마비가 왔다. 오른팔이 움직여지지 않더니 오른쪽 어깨와 팔목에서 열이 나면서 목 뒤에서부터 오른 손가락 끝까지 전기가 통하듯이 저려왔다. 움직이려고 애쓰면 애쓸수록 숨까지 가빠왔다. 그대로 누워서 꼼짝도 할 수 없었다. 밤중에 문 여는 정형외과를 찾아가서 먼저 엑스레이를 찍고 주사와 물리치료, 그리고 약 처방을 받았다. 스트레스와 과로로 인한 근육의 경직과 경련이라고 했다. 완치하지 않고 계속 무리할 경우 만성관절염에 걸릴 수 있다는 진단을 받고 말았다. 근육주사는 해롭다고 하여 항생제 처방만 받은 뒤 안마치료를 했다. 산재처리에 대해 문의했지만 중개기관에서는 확실히 아파 누운 경우가 아니면 안 된다고 했다.

 
일을 쉬는 동안에도 나는 계속 중개기관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이용자의 여건이 열악할수록 돕겠다고 나서는 활보가 그것도 주말에는 거의 없다는 것이었다. 코디는 주말에만 일을 해줄 수 없겠냐고, 주말에는 도저히 사람이 없다고 또 부탁하기 시작하였다. 이렇게 하여 새로 만난 이용자는 운동능력의 점차적인 상실로 인하여 시시때때로 넘어지는, 자기 몸을 스스로 지탱하기조차 힘든 사람이었다. 일어설 때도 다른 사람이 붙잡아주지 않으면 설 수조차 없었다. 도우미 없이 생활하던 중 넘어져 119에 실려간 것이 여러 번이었다. 이런 경우, 쓰러지는 몸을 받쳐주기 위해 곁에 사람이 항상 있어야 한다. 또한 집안일을 대신 해주기 위해서는 2인 보조가 정말 필수적이었던 상황이었다. 그러나 2인보조 신청을 해도 지원받지 못했으며 서비스는 늘 안전사고의 위험 속에서 이루어져야 했다. 거주공간에 자신의 몸을 안전하게 지탱하기 위한 보조기구도 없었고 매우 열악한 주거환경과 열악한 건강상태, 매우 부족한 서비스제공시간과 제공인력, 이 모든 조건이 이용자의 생명을 언제라도 앗아갈 수 있는 심각한 요소들이 되었다. 그러한 환경 속에서 이용자의 최대 만족을 위해 서비스제공인력이 받아야 했던 육체적, 정신적 고통과 스트레스는 굳이 말로 다 설명하지 않아도 전달될 것이라 본다.

 
서비스제공을 더 안전하고 신속하고 편안하게 할 수 있는 지원체계가 없으므로 이용자와 활보인 모두 서비스가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건강과 안전의 사각지대에 놓이게 된다. 전문가들이 설계한 운동프로그램, 안마서비스나 물리치료를 정기적으로 받기만 해도 활보인들은 근육의 무리한 사용으로 다치는 일을 크게 예방할 수 있으며, 이용자에게 근심 걱정 없이 즐거운 마음으로 질 좋고 안전한 서비스를 안정적으로 제공할 수 있다. 서비스 제공인력이 전문이고 체계적인 지원을 받게 될 때, 이용자의 서비스 만족과 안전이 증진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사실이다. 정부와 지자체의 지원에 의해 각 센터가 속한 지역의 안마사, 물리치료사, 침술사, 정형외과 전문의 같은 의료인들과 체육인들이 연계된 지역건강지원체계가 시급히 마련되어야 한다. 뿐만 아니라 활동보조인과 이용자 모두의 체력적 조건과 건강상태를 면밀히 평가해 적절하게 연계하는 중개기관의 노력도 필요하다.

 
그렇지만 활동보조 인력이 겪는 문제들은 체력적인 한계 부분에만 있지 않다. 장애 유형의 다양함만큼 서비스도 다양해야 하며 몸을 쓰지 않는 서비스 제공도 많다. 또한 실제로 서비스 제공현장에서 활보인은 제공기관에 등록할 때 지원했던 한 가지 또는 두세 가지 활동만 제공하지 않는다. 활동보조의 범위가 어디까지가 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제기도 일어나고 있는 상황이지만, 제공기관이나 중개기관 그 어느 곳에도 서비스 이용자들에게 활동보조를 단순히 파견만 하고 있을 뿐 서비스내용에 대한 어떠한 행동 지침이나 관리 감독도 회피하고 있다. 방임과 방치 속에서 서비스참여 당사자들 모두 원치 않는 불미스러운 사례들이 빈번히 발생한다. 차별 없는 평등 사회를 위해 우리 사회구성원들이 서로 논의하고 합의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고 오직 장애인의 긴급한 필요에 맞추느라 급하게 밀어붙인 장애인활동보조제도는 많은 문제와 혼돈을 일으켰다.

 
평등한 관계와 인권을 존중하는 인식의 전환과정이 생략된 채 제도화되어 이용자들은 스스로를 단순 소비자(구매자)로 인식하면서 대인관계의 핵심인 인간관계(평등, 상호존중, 상호배려 등)의 부분을 삭제시키며 활동보조인을 자신들의 필요에 의해 단순 고용된 대상으로 인식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대인관계 서비스가 단순히 돈에 의해 ‘구매’됨으로써 활동보조인과 이용자 간에 서비스 구매자와 제공자의 인간적인 상호존중과 상호부조의 관계가 파괴되고 있다. 특히 서비스제공이 평등한 지위에서 이뤄지지 않을 때 인격모독적인 일들이 벌어지게 된다.

 
또한 질적인 서비스제공을 위해 활보인이 발휘하는 정서적인 배려의 부분(친절, 친밀성, 이해심, 공감, 인내 등)을 사적인 필요를 위해 함부로 이용하는 경우도 문제가 된다. 과도한 신변처리서비스 요구에 의해 성희롱적인 감정을 느끼게 되거나, 반드시 필요한 서비스일지라도 이용자가 활보인의 입장을 고려하지 못한 채 자신의 필요에만 집중해 활보인이 원치 않는 서비스를 갑작스럽게 요구하게 될 때에는 반드시 필요한 서비스이기 때문에 활보인은 거절할 수 없어서 더욱더 심적인 번민과 고통을 겪는 경우도 많다.

 
이 모든 불상사는 중개기관과 제공기관이 마땅히 책임져야 할 인권과 평등에 관한 교육과 캠페인, 그에 따른 인력관리를 전혀 하지 않은 데서 발생하는 문제점들이다. 중개기관과 제공기관은 서로에게 책임을 떠넘기면서 방치하는 가운데 어려움은 이용자과 제공인력 간의 갈등으로 표출된다. 특히 평등의식이 결여된 소비자주의로 인해 “말 안 들으면, 맘에 들지 않으면 바꾸면 그만이다.”라는 의식이 이용자들 간에 팽배하게 되어 대화를 통한 서로 간의 이해의 가능성은 사라지며 서비스 제공현장은 그야말로 지옥과 같은 상황으로 변질되는 것이 오늘날의 안타까운 모습이다.

 
장애인의 인권증진을 위해 마련된 장애인활동보조제도가 차별철폐와 인간다운 삶의 증진이라는 본연의 목표에 맞게 잘 실행될 수 있기 위해서는 관련기관과 관련 주체들 간의 소통을 위한 구체적인 투자와 진지한 노력과 결단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 이 글은 활동보조인연대(준), 사회서비스시장화저지공동대책위원회가 11월 17일 한성대 에듀센터 교육실에서 연 ‘장애인 활동보조인 노동조건 및 건강실태 조사 보고·토론회’에서 발표된 글입니다.


 
이시진 장애인활동보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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