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등급제는 장애인의 삶 전체를 낙인 찍어"
 
1017조직위, 광화문역 농성장에서 올해 일정 시작
"서로 부양의무자가 돼 수급 받지 못하기도 해"
2012.10.12 00:20 입력

 

▲2012 1017 빈곤철폐의 날 조직위원회가 11일 저녁 8시 광화문역 해치마당에서 '장애등급제와 부양의무제는 왜 폐지되어야 할까?'라는 주제로 당사자들을 이야기 손님으로 초대해 이야기를 듣는 자리를 마련했다.

 

‘장애등급제와 부양의무제는 왜 폐지되어야 할까?’라는 주제로 당사자들을 이야기 손님으로 초대해 이야기를 듣는 자리가 마련됐다.

 

2012 1017 빈곤철폐의 날 조직위원회(아래 1017조직위)는 11일 저녁 7시 광화문역 해치마당에서 ‘영상과 토크로 공부하며 두드리는 연대의 문 톡톡!(Talk Talk!)’ 행사를 열었다.

 

이날 행사에는 52일째 광화문역에서 농성 중인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 공동행동, 1017조직위 회원들이 함께했다.

 

첫 번째 이야기 손님으로 나선 인권연대 장애와 여성 ‘마실’ 김광이 대표는 “부양의무제와 관련해 개인적인 삶을 돌아보면 초등학교 때 부모님이 다리 수술을 시키려고 했는데, 가난하지만 생활보호대상자가 아니어서 지원을 받을 수 없어 그 비용을 감당할 수 없었다”라면서 “그때 이웃에서 호적에서 나를 분리한 뒤 할아버지의 호적으로 들어가 생활보호대상자가 되는 방법을 가르쳐주었다”라고 전했다.

 

김 대표는 “그렇게 생활보호대상자가 되어 세 차례 수술을 받고서야 보조기를 작용하고 걷을 수 있게 되었으며 이것은 부양의무제 폐지와 더불어 떠오르는 기억”이라면서 “당시와 마찬가지로 지금도 가난한 사람들이 살기 위해 ‘법망을 어떻게 하면 피해 갈 수 있을까?’라고 고민할 수밖에 없는 구조는 계속 이어지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김 대표는 “사오십 대 장애여성들인 마실 회원들을 보면 장애인과 결혼했든, 비장애인과 결혼했든 여유롭게 사는 사람은 없다”라면서 “이들 중에는 서로의 부양의무자인 여든이 넘은 아버지와 오십 넘은 딸이 별다른 소득이 없음에도 집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누구도 수급자가 되지 못하는 사례도 있다”라고 전했다.

 

김 대표는 “대부분 사람이 자본주의적 삶을 살아가는 현실에서 모든 것을 고려해 가난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을 만든다면 이는 시도하기조차 어려울 수 있다”라면서 “따라서 부양의무제 폐지에 공감한다면 이를 폐지하고 이후에 파생하는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으로 접근해야 하며, 이 과정에서 회의하지 않고 신념을 계속 가지는 것이 우리에게 최선의 힘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박홍구 집행위원장이 "획일적으로 정한 장애등급이 장애인의 삶 전체를 규정하고 있다"라면서 "실제로는 그렇지 않음에도 1급 장애인은 '아무것도 못하는 사람', '의사소통이 어려운 사람', '불쌍한 사람'이라는 식으로 사회적 낙인이 찍힌다"라고 지적하고 있다.

 

이어 두 번째 이야기 손님으로는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박홍구 집행위원장(지체장애 4급)이 나섰다.

 

박 집행위원장은 “장애등급제의 문제점은 우선 의학적 판정기준에 따라 획일적으로 정한 장애등급으로 장애인의 삶 전체를 규정한다는 것"이라면서 "실제로는 그렇지 않음에도 1급 장애인은 '아무것도 못하는 사람', '의사소통이 어려운 사람', '불쌍한 사람’이라는 식으로 사회적 낙인이 찍힌다”라고 지적했다.

 

박 집행위원장은 “또한 국가는 장애인의 개별적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행정 편의적으로 등급에 따라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라면서 “아울러 사회서비스임에도 광범위한 사각지대를 발생시키는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박 집행위원장은 “이 때문에 현장에서는 장애인연금을 신청하라는 주민센터의 권유에 장애등급재심사를 받았다가 1급에서 2급으로 등급이 하락해 장애인연금보다 더 절실한 활동지원서비스를 받지 못하는 ‘날벼락’을 맞은 사례들이 속출했다”라면서 “특히 뇌병변장애인의 경우 보행이 가능하다는 이유로 1급에서 탈락하고, 지적장애인의 경우에는 분명히 장애가 있어 서비스가 필요함에도 등급외 판정을 받아 ‘비장애인’이 되는 웃지 못할 일들도 일어나고 있다”라고 전했다.

 

박 집행위원장은 “장애등급제를 폐지하자고 하면 ‘모든 장애인에게 서비스를 똑같이 주자는 거냐?’라고 오해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우리의 요구는 개인별로 필요한 서비스를 받는 시스템을 만들자는 것”이라면서 “예를 들면 저는 활동보조인은 필요 없지만 전동휠체어를 타야만 하므로 장애인콜택시를 이용할 수 있어야 하는데 4급이라는 이유로 등급 제한에 걸려 이를 이용하지 못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박 집행위원장은 “개인별로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틀을 구축하는 것이 처음에는 힘들 수 있겠지만, 구축된다면 지금보다 몇십 배는 더 합리적일 것”이라면서 “이에 따라 국가 예산이 더 필요하겠지만, 어차피 선진국 중 장애인복지예산이 바닥 수준인 우리나라는 이를 계속 늘려야 하므로 예산 증가에 대한 부담이 문제가 될 수는 없다”라고 강조했다.

 

이날 행사는 최옥란 열사 10주기 추모영상인 '최옥란들'을 함께 보는 것으로 시작했으며, 노숙인인권공동실천단에서 활동하는 안상호 씨가 '내가 왜', '불나비' 등을 부르며 문화공연을 펼쳐 참가자들의 열띤 호응을 받았다.

 

한편, 1017조직위는 오는 17일 빈곤철폐의 날에 ‘빈곤철폐의 날을 맞은 우리의 요구 선언’ 기자회견, 1017 빈곤철폐의 날 투쟁대회, 빈민열사·희생자합동추모제를 연이어 진행할 예정이다.

 

▲행사 첫 순서로 최옥란 열사 10주기 추모영상 '최옥란들'을 보는 사람들.

 

 

▲노숙인인권공동실천단에서 활동하는 안상호 씨의 공연에 호응하는 사람들.



 
홍권호 기자 shuita@beminor.com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sort

[함께걸음]성람재단 산하 철원장애인시설 '빨간딱지'

성람재단 산하 철원장애인시설 '빨간딱지' 의정부지방법원, 지난 23일 철원 장애인 시설에 유채동산가처분 2008년 05월 30일 (금) 09:59:45 전진호 기자 0162729624@hanmail.net 성람재단 산하 철원 장애인 시설에 속칭 ‘빨간딱지’가 붙었다. 서울시는 성람재...

[비마이너] "24시간 활동보조 쟁취, 김주영 억울함 풀자" [32]

"24시간 활동보조 쟁취, 김주영 억울함 풀자" 장애해방운동가 고 김주영 동지 49재 열려 "함께 싸우면서 우리도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주자" 2012.12.13 21:22 입력 ▲장애해방운동가 고 김주영 동지 49재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주최로 13일 늦은 5시 장애...

[함께걸음]“진정·상담 늘어 인원 늘려야 할 판”

“진정·상담 늘어 인원 늘려야 할 판” 인권위 지역사무소 폐쇄방침에 반발 움직임 거세 2009년 01월 15일 (목) 09:49:55 김영대 기자 zero@siminsori.com [시민의 소리] 행정안전부가 인원 축소 및 지역사무소 폐쇄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가운데 지역사회에서...

[비마이너] "장애등급제는 장애인의 삶 전체를 낙인 찍어" [13]

"장애등급제는 장애인의 삶 전체를 낙인 찍어" 1017조직위, 광화문역 농성장에서 올해 일정 시작 "서로 부양의무자가 돼 수급 받지 못하기도 해" 2012.10.12 00:20 입력 ▲2012 1017 빈곤철폐의 날 조직위원회가 11일 저녁 8시 광화문역 해치마당에서 '장애등...

[비마이너] 인권과 건강의 사각지대, 활동보조서비스의 제공현장 [28]

인권과 건강의 사각지대, 활동보조서비스의 제공현장 구체적인 투자와 진지한 노력과 결단 선행돼야 2012.11.26 16:58 입력 최근에 장애인들이 사고로 목숨을 잃는 사건이 이어지면서 장애인활동보조서비스의 양적인 확대의 필요성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형...


오늘 :
15 / 42
어제 :
224 / 824
전체 :
567,783 / 18,834,332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