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질문없습니다

[기고-국민과 대화 관전기] 역시나 실망이었습니다. 대통령!

박진(다산인권센터 상임활동가)  / 2008년09월10일 12시32분

100분의 시간이 지났습니다. 꽤 긴 시간이더군요. 나 같은 사람이야, 당신이 언급한 ‘반대를 위해 반대’ 하는 사람에 속하니, 당신이 무슨 말을 하더라도 곱게 들리지 않습니다만, 그래도 최대한 성의있고 진지한 자세로 경청했습니다. 혹시나 당신 말에 진정성이 있다면 집권 5년 동안 곱씹고 곱씹어 되풀이 해줄 의향이었고, 혹여 거짓이라도 있다면 손가락에 독 오른 비판을 키보드에 실어 열심히 두들겨 댈 심산이기도 했으니까요. 어쨌든 인내의 100분이 지났습니다.

그런데 역시나 실망이었습니다. 대통령!
‘질문있습니다’라는 그럴싸한 자리를 만들어 놓고, 국민들이 듣고 싶은 분명한 대답은 하나도 없이 본인하고 싶은 이야기만 하다가 사라지셨으니 말씀입니다. 어쩌면 그리도 유머조차 없는지, 본인 말처럼 정치 생활이 짧은 사람임에는 분명한 것 같습니다. 그 길고 긴 지루한 시간 중에, 그래도 실소라도 터트린 것은 촛불시위 대학생이라 밝힌 분이 “민심을 강제로 다스리려 한다면 제2의 촛불이 일어 설 텐데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라고 묻자, “무섭다, 협박을 하시는데...참여만 했지 주동자는 아니죠”라고 반문한 대목이었습니다. 씁쓸히 조금 웃었습니다. 당신은 역시나 자신과 다른 목소리에 대한 관용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100여 일 넘는 동안 촛불을 들고 거리에 서있던 국민이 당신을 협박하는 사람들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는 고백이기도 했으니, 이를 어쩌면 좋습니까. 국민 통합과 화합을 주창하는 당신의 호소가 하나도 공명하지 못하는 것은 바로 이런 태도 때문입니다. 당신이 저지른 광우병 위험 미국산 쇠고기 수입으로 인해 파국에 이른 국민적 갈등은 같은 날 새벽 식칼테러로 이어졌고 무고한 국민 한 명이 지금 생사의 기로에 있습니다. 서울시를 하나님께 봉헌하겠다던 견고한 당신의 신앙심은 종교편향의 갈등으로 이어져, 불심을 분노하게 만들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강남땅부자(강부자)와 고려대소망교회영남권(고소영)에 대한 아낌없는 후원은 당신이 국민의 대통령이 아닌, 일부 계층의 지원자에 불과하다는 것을 드러냈습니다. 이 모든 것이 당신이 집권한 6개월 새에 이뤄졌으니, 뺄셈을 할 줄 아는 대다수 국민들은 나머지 임기가 깜깜할 수밖에 없습니다. 안타깝습니다.

당신은 시종일관 서민을 입에 올렸고, 시장에서 장사하는 상인의 마음,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이해, 농민에 대한 걱정, 데모를 했던 젊은 날의 심정까지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나 오늘도 곡기를 끊고 노동의 권리를 주장하는 기륭전자 여성노동자의 애끓는 하소연을, 갈 곳이 없어 철탑에 오른 KTX 승무원들의 절망을 아는 것 같아 보이지는 않습니다. 여전히 기업이 살아야 비정규직 문제가 풀린다는 하나 마나 한 소리를 되풀이 하니 말입니다. 그걸 누가 모릅니까만, 당신이 주창하는 법치조차 무시하며 노동자들을 벼랑 끝으로 내모는 기업주들까지, 심지어 제 새끼보복을 위해 조직 폭력배까지 동원한 폭력범까지 경제살리기의 이름으로 모두 구제해 주는 것은 말이 안 되지 않습니까. 이것은 당신의 기업인 대사면에서 이미 볼 장 다 보았으니, 다시 언급할 필요도 없겠습니다. 어쨌든 오늘도 내일도 죽도록 힘겨운 것은 힘없는 노동자들과 당신이 언급한 그 무수한 사회적 약자들임에는 분명합니다.

제가 만일 국민패널로 그 자리에 있었다면, 청와대 경호시범 장소에서 드러난 장애인에 인식을, 당신의 생각을 물었을 겁니다. 테러범에 대한 완벽한 제압을 선보인 당신의 경호인들은 왜 하필 생존권 요구를 내걸고 구호를 외치는 장애인을 시범의 대상으로 삼았습니까? 노무현 정부의 공식행사에서 장애인들이 피켓을 들고 침묵시위를 했던 과거, 나 이명박은 절대 눈 뜨고 볼 수 없다는 협박입니까? 바닥에서부터 자라온 당신이지만 이제는 그 바닥에서 살고 있는 국민이 보이지 않는다는 말인 건가요? 생존권 보장을 외치는 국민이 테러범과 같다는 당신 정부의 태도가 못내 절망스러워 드리는 말입니다.

경제문제에 대한 국민의 우려에 대해서는 안심해라, 제2의 IMF는 없다, 앵무새처럼 반복했지만, 추석 이후에 오를 세금 걱정조차 불식시키지 못했습니다. 강만수 장관에 대한 신임을 반복한 대목도, 현재의 신뢰할 수 없는 경제정책에 드라이브를 걸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로 읽혀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주택문제에 대해서는 심지어 그린벨트를 풀어서 해결할 마음이 있다는 어이없는 대답을 했지만, 그게 어디 될 법한 말입니까? 아파트가 없어서 주택문제 해결이 안 됐습니까? 적어도 공직자중 가장 많은 빌딩과 부동산을 가졌다는 당신이 할 말은 아닌 거 같습니다. 등록금 걱정을 하는 대학생에게는 무이자 정책과 장학금 수혜를 늘리겠다고 하는데, 그게 등록금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이라고는 어느 누구도 생각하지 않을 겁니다. 경쟁해서 생존하라는 이 시대의 이념이 존재하는 한, 그것을 금과옥조로 여기는 당신이 있는 한, 지금의 불안은 현존하는 공포입니다.

하고 싶은 말은 구구절절이 많지만, 당신이 벌인 일에 대응하느라 늘 바쁜 관계로 한 가지만 더 말씀드리고 글을 마칠까 합니다. 하루가 멀다 하고 벌이는 압수수색, 편향된 만찬 정치에 대해 전문가 패널들이 지적하자 당신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일류 선진국가 만드는 목적 외에 없다, 그 일 하려면 법이 지켜져야 한다. 보복적 차원에서 한다는 건 있을 수 없다.” 그리고 “다양한 사람 만난다.” 거짓말하지 마십시오.

당신이 인터넷을 조금만 할 줄 안다면, 당신의 국민이 지금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분명히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의견을 말할 수 없는 사회, 감시와 사찰이, 국정원과 독재의 과거가 부활하는 지금, 어떠한 질문도 의사도 표현할 수 없는 침묵을 강요하는 사회. 그것을 제일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또한 분노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분명히 예언하건대, 당신의 5년 동안 정의(正義)는 감옥을 채울 것입니다.

조언을 하자면 당신이 입에 달고 있는 법치, 자본주의 질서를 지키고 싶다면 먼저 당신부터 그것을 지킬 것을 당부드립니다. 힘없는 국민에게 강요하지 말고 먼저, 힘있는 당신부터 솔선수범하시길 부탁합니다. 당신이 잃어버린 10년 동안 국민은 충분히 성숙하였습니다. 이걸 따라오려면, 뉴라이트나 한나라당이나 보수 기독계 인사들 말고 그 외의 사람들 좀 자주 만나고 말입니다. 참 딱한 노릇이라 말이 길어졌습니다. 나이도 지긋한 양반이 아직 세상에 대해 모르는 게 많아 보여 드리는 말입니다. 그럼 한우 좀 많이 드시고 광우병 걸리는 일 없으시길 바라며, 이만 안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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