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탈시설, 탈출구가 막혀있다
에이블뉴스, 기사작성일 : 2010-06-08 16:37:21
최근 잇따라 시설장애인들이 탈시설과 지역사회에서의 자립생활을 요구하고 있다. 09년 6월 부정부패로 얼룩진 시설문제를 지적하며 지역사회 거주대책을 요구한 마로니에 공원 농성에 이어, 09년 12월 시설서비스를 지역사회에서 받고자 사회복지서비스 변경신청서를 제출한 3명의 시설퇴소장애인들은 해당구청이 아무런 답변이 없자 지난 6일 청주지방법원에 사회복지서비스 변경신청 거부 처분에 대한 취소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

대학로 농성참여자 방상연(38)씨는 말한다. “10살 때 버려진 뒤 28년을 장애인요양시설에서 살았는데, 대소변 처리가 힘들다며 조금만 먹게 하거나, 말을 듣지 않다고 수시로 구타를 했다. 외출은 꿈을 꿀 수도 없었다. 정말 내가 이렇게 살아야 하나 하는 회의감에 밤을 하얗게 지샌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정말 그곳은 감옥과 같았다.” 이런 경험은 비단 방 씨만의 경험은 아니다. 퇴소장애인들은 한결 같이 시설 비리와 인권침해관련 문제를 제기하며, 인간답게 살기 위한 자립생활을 요구하고 있다.

현재, 2,250명(‘08)이 장애인생활시설에 거주하고 있다. 그렇다면 입소 장애인 중 몇 명이 시설퇴소를 원할까? 정확히 알 수는 없다. 하지만 규모는 추정 가능하다. 57%가 시설을 나가고 싶어하고, 주거와 지역사회생활에 지원이 제공된다면 70%까지 퇴소를 희망하고 있다. 시설생활에 대해 10명 중 9명꼴로 매우 불만족을 토로하고 있다. 작년 서울시 조사결과다.

한편 장애인생활시설은 법률에 의해 장애인이 필요한 기간 동안 생활하면서 재활서비스를 통해 사회복귀 준비를 돕는 기관이고, 장애인 자립을 위해 상담·치료·사회적응훈련 등의 서비스를 지원하고 있다.

의문은 여기에 있다. 대부분 시설생활인들이 시설을 벗어나 지역사회에서 살기를 희망하고 있고, 이를 위한 지원프로그램이 가동되고 있는데 왜 장애인은 지역사회에 나올 수 없는 것일까? 시설에서 지역사회로 거주를 옮기는 데 방해기제가 작동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장벽들은 시설 안팎으로 존재하고 있다.

우선 시설 안으로 들어가 보자.

시설장애인들은 지역사회로 나가는 데 두려움이 있다고 호소한다. 지난해 대학로에서 농성한 A씨는“22년 만에 시설문턱을 넘어 세상에 나올 때 잘 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컸다”고, 소송활동을 하는 B씨는 “시설 밖으로 나가는 것도 허락되지 않았다”고, 그리고 C씨는 “그동안 매일 똑같이 무의미하게 산 것이 너무 싫었다”고 말한다. 22년, 19년, 14년은 이들이 각각 시설에서 보낸 년 수이다. 강산이 두 번 바뀔 만큼 오랫동안 세상과 단절된 채 한 곳에서만 살았다. 사회로 나아가고자 하는 마음을 쉽게 포기할 수 밖에 없게 만드는 세월이다. 더욱이 바깥세상으로부터 살아갈 방법, 정보, 상담이 충분히 제공되지 않는다면, 의지만으로는 지역사회에 나오기가 불가능해 보인다. 현재 시설생활인의 평균 입소기간은 11년이고, 지적장애인의 경우 이의 2배로 추정되고 있다. 현실이 이 정도라면, 시설에서 효과적인 사회적응프로그램을 운영한다 하더라도 장애인의 사회복귀에 효과가 있는지는 미지수다.

퇴소결정구조도 문제다. 복지부 관계자에 따르면 퇴소여부는 시설자체지침에 따라 이루어지고, 대부분은 보호자와 시설운영자간 상담과 합의로 결정된다고 한다. 여기에서 몇 가지 추정이 가능하다. 심사과정에서 장애인이 배제될 수 있으며, 특히 의사소통에 장애가 있는 장애인일 경우 퇴소욕구를 표현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퇴소과정에 참여하는 것은 무리일 것이다. 그리고 입소자를 대신해 보호자가 퇴소여부를 결정할 때 관건은 그 가정의 돌봄여건이다. 생활여건이 허락되지 않는다면, 부모는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자식을 시설에 살게 할 수밖에 없다. 이를 가늠할 단서가 있다. 지난해 서울시 통계에 따르면 70% 장애인이 퇴소를 희망하는 반면 장애인부모는 90%이상이 퇴소를 바라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다른 퇴소의 방해요소로 입소장애인을 통해 얻게 되는 시설 측의 경제적 편익도 배제할 수 없다. 시설서비스에 대한 모든 재정은 시설에 정부보조금의 형태로 교부된다. 이때 입소한 장애인 수에 따라 보조금지원액이 결정되는데, 보조금에는 직원인건비가 포함되어 있고, 여기에 생활인을 위한 장애인수당과 기초생활급여까지도 지급되고 있다. 만약 시설에 대한 관리감독이 소홀하다면 시설지원비를 다른 용도로 사용할 가능성이 충분한 것이다.

회계비리, 보조금 횡령, 입소비 부당징수, 친인척으로 구성된 이사회운영 등의 시설문제는 어제 오늘만의 일은 아니며, 시설을 지도하고 관리해야할 감독기관의 감사는 형식적으로 적법성 여부만을 체크하는 현실적 상황으로 볼 때 그 의혹은 증폭될 수밖에 없다. 짐작이 가는 데이터가 있다. 2006년 국가인권위원회 조건부신고시설조사에 따르면, 시설생활인의 48%가 성폭력을 포함한 각종폭력과 폭언을 당했으며, 가해자의 50%가 시설장, 총무 등이었다. 그리고 생활인의 72%가 수급자였으나 통장관리를 스스로 하는 경우는 겨우 7.7%였고, 생활인의 69%는 임금을 받지 못하고 일을 했으며, 이러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93.2%가 정부나 지자체 사회복지공무원을 만나본 적이 없다고 한다.

험난한 과정을 거쳐 우여곡절 끝에 입소장애인이 지역사회로 나왔다고 하더라도 현실은 녹록치 않다. 당장 살아야 할 집과 최소한의 생활비 마련이 걱정이다. 현재 퇴소한 장애인을 위한 정책도 미비하다. 중앙정부차원의 지원은 없고, 16개 지자체 중 서울시에서만 ‘04년 100만원지급을 시작으로 ‘09년부터는 1회 최대 500만원을 40명의 퇴소장애인에게 퇴소정착금으로 지급하고 있으며, 올해 4월 전라북도에서 장애인가구당 정착금 500만원을 지원키로 한 상태다. 500만원 정착금의 수준이 적절한지에 대한 의문이 강하게 남는다.

정착금신청절차에 대해 살펴보자. 정착금을 받는데 조건이 있다. 정착금 수급은 시설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살 수 있는 거주지를 확보했을 때만 가능하다. 과연 시설장애인이 주변 도움 없이 거주지를 구하는 것이 가능한 일인가? 더욱 놀라운 것은, 정착금 신청인이 퇴소장애인 본인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입소한 시설장이 구청에 신청하는 구조이고, 이 과정에서 장애인은 계속된 부탁요청, 스스로 결정하지 못함으로 인한 자괴감을 경험하며 심지어 시설측으로부터 재입소 압박을 받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게다가 거주지확보는 정착금신청에만 걸림돌이 되는 것이 아니다. 중증장애인 사회참여에 반드시 필요한 활동보조인 신청이나 국민기초생활급여를 신청하는 때의 필수조건으로 되어 있다.

살 집을 마련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영구임대아파트에 입주하기 위해 각종 조건을 충족해야 하고, 입주까지 최소 1년 이상이 걸린다. 그리고 나서도 행운의 여신이 따른다면 입주가 가능하다. 그렇다고 고민이 끝나는 것이 아니다. 편의시설문제가 기다린다. 자신의 집이 아니라면 집주인 눈치 때문에 시설개조조차 엄두를 낼 수 없다. 이처럼 입소한 장애인이 퇴소를 하기까지 넘어야하는 장벽은 수없이 많다.

현재 지방정부 수준에서 정착금지원, 소규모 거주시설 확충 등을 계획하고 있으나 퇴소 장애인의 욕구를 충족시키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헌법과 국제장애인권리협약은 ‘장애인이 동등한 조건으로 거주지를 선택하고, 누구와 살 것인가에 대한 선택이 자유롭고, 특정한 거주형태를 강요받지 않는다’고 명시하고 있다. 정부차원에서 이를 보장하기 위해서는 생활시설퇴소를 가로막고 있는 장벽부터 먼저 제거해야 할 것이다.

*이 글은 한국장애인재활협회 기획실장 남정휘 님이 보내왔습니다. 한국장애인재활협회 웹진 4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에이블뉴스 회원 가입을 하고, 편집국(02-792-7785)으로 전화연락을 주시면 직접 글을 등록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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