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방님, 저는 죽고 싶어도 죽을 수도 없습니다”

<추노> 속 장애여성이 겪는 이중 억압장치

황진미 영화평론가
추노
ⓒKBS

올해 가장 화제를 모은 드라마는 단연 <추노>이다. 조선 인조때를 배경으로 노비를 비롯한 천민들의 생활을 그린 사극으로, 명품 근육을 자랑하는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와 TV에서 흔히 볼 수 없었던 세련된 카메라 앵글과 공들인 OST로 시청자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는다. <추노>의 기본 골격은 추노꾼과 노비반란 세력을 통해 본 신분질서의 모순과 소현세자 죽음을 둘러싼 정치적 갈등 등으로 요약될 수 있는데, 기본 골격에 속하지 않더라도 대단히 인상적인 인물들이 많이 등장한다. 그 중에서 가장 강한 인상을 남기는 인물은 한 번도 사극에서 본적이 없는 사대부 가의 중증장애여성이다. 극중 최고의 권모술수를 자랑하는 좌의정의 딸이자, 피도 눈물도 없는 무사 황철웅의 아내 선영은 중증뇌병변 장애인이다. 분량은 적지만 워낙 중요한 인물들 사이에 배치된 데다가, 시각적으로 강렬한 임팩트를 주기 때문에 결코 적지 않은 비중이다.

선영에 대한 시청자들의 반응은 배우 하시은의 사실적인 연기에 감탄하는 의견이 주를 이룬 가운데, 장애인 인터넷신문 <에이블 뉴스>에는 아버지와 남편 사이에 낀 무력한 인물인데다가 자신에게 냉담한 남편을 사랑하는 ‘착한 장애인’ 캐릭터가 불편하다는 의견과 나아가 ‘미국드라마 <하우스>에서 보았던 못된 장애인 캐릭터를 우리 드라마에서도 보길 바란다’는 논조의 칼럼이 소개되었다. 물론 상투화된 장애인 캐릭터를 지적하는 것은 의미 있지만, 이러한 비판을 <추노>에 적용하기엔 편협하다는 느낌이 든다. 이 드라마의 장애인 캐릭터가 지니는 다층적 의미를 너무 피상적으로 파악한 게 아닌가 생각되기 때문이다.

조선시대 사대부가의 중증장애 여성이라…. 일단 한 번도 사고해본 적이 없는 화두이다. 조선시대 양반가에도 중증장애 여성이 존재했을까, 했다면 어떤 방식으로 존재했을까 등의 의문을 품게 했다는 것만으로도 <추노>는 장애에 대한 일반인들의 관심과 인식을 높이는 역할을 한 셈이다. 그런데 <추노>는 단지 그녀의 불편한 몸과 무시 받는 정황만을 그리며 그녀를 연민의 대상으로 소비하지 않는다. 그녀의 목소리와 미처 전달되지 못하는 내면의 소리를 기꺼이 담으며, 카메라는 다른 인물들이 사라진 이후 혼자 있는 그녀를 클로즈업 하는 등 그녀를 하나의 주체로 그리고 있다. <추노>는 사극에서 주로 다뤄졌던 왕이나 사대부가 아닌 노비 등 하층민을 주인공으로 삼은 것과 마찬가지로, 장애여성이라는 가장 소외된 계층에 시선을 두고 있다.

그녀는 “배넷 병신 딸을 맡겨두고…”라는 좌의정의 대사에서 알 수 있듯이 선천성 뇌병변 장애아였다. 산전관리가 없고 제왕절개가 불가능한 조선시대에는 지금보다 더 많은 선천성 뇌병변 장애아가 태어났겠지만, 상당수는 어려서 죽었을 것이다. 높은 영아사망율로 장애가 없는 아이들도 전염병이나 기아 등으로 많이 죽었으니, 중증 장애아들은 단지 젖을 빨기 힘들어서라도 생존의 벽을 넘기 힘들었을 것이다. 선영은 최상류층 부모의 경제력으로 성인이 되도록 성장하고, 반가의 규수로 교육을 받는가하면, 혼인까지 한다. 전통시대의 장애인의 생활사를 정리한 역사서 <세상에 버릴 사람은 아무도 없다>(정창권, 문학동네, 2005)에 의하면 조선시대 양반가의 선천성 장애남성은 똑같이 교육받고 친구도 사귀었으며 과거를 보아 관직에 진출할 수도 있었고, 결혼도 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여성의 경우엔 아이를 낳고 기르기 힘들다고 여겨져 결혼을 시키지 않았다고 한다. 조선 후기 여성가사 <노처녀가>는 중증 복합장애를 가진 여성이 나이가 오십에 가깝도록 출가하지 못한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며 이웃 총각과의 결혼을 꿈꾸는 내용으로 이루어져있다.

선영이 중증 장애여성임에도 결혼할 수 있었던 것은 권력자의 딸이기 때문이다. 좌의정은 가난한 편모슬하의 아들이자 ‘2등 콤플랙스’로 출세욕에 불타는 무관을 자신의 심복으로 두면서 사위가 될 것을 권유한다. 그는 관직에 올라 노모를 편히 모시려는 욕심에 혼인을 받아들인다. 그러나 아내에 대한 정이나 연민은 전혀 없으며, 오히려 사위도 자식이라 말하면서도 자신을 사지로 내모는 장인에 대한 적개심을 아내에게 투사하여 증오를 퍼붓는다. 그는 아내가 힘들여 말하거나 하루 종일 걸려 쓴 편지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고 무시해버린다. 겨우 아내와 눈을 맞추고 하는 말은 “내 살면서 많은 잘못을 하였지만, 그대와 혼인한 게 가장 큰 잘못이었소. 내 반드시 그대의 아버지를 밟고 일어서리다” 같이 그녀의 가슴에 못 박는 말들이다. 하지만 남편을 향한 선영의 마음은 애틋하다. 남편을 진심으로 걱정하며 “아버님께 맞서지 마세요.” 라고 조언하려 애쓰고, 아버지에게 “그이를 따뜻하게 대해달라” 간청한다. 그리고 남편이 모진 말을 퍼부어도 자신에게 눈을 맞추고 말하는 것만으로도 기쁘게 생각한다. 이들 관계는 분명히 왜곡되어 있지만, 여기서 핵심은 ‘착한 장애인’ 클리셰가 아니다.

추노 선영
<추노>에서 뇌병변장애인으로 나오는 선영 ⓒKBS

여기서 주목할 것은 이들 관계가 가부장적 신분질서 하에서의 정략적 결혼관계의 극단적인 형태라는 점이다. 가부장적 신분질서하의 결혼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질적으로는 이들 관계와 비슷하다. 권력을 지닌 장인에게 딸은 충성을 바칠 사위를 얻기 위한 매개물이고, 사위에게 아내는 든든한 뒷배의 장인을 얻기 위한 매개물이다. 당사자들 간의 관계는 부차적이다. 여자는 두 남자 사이의 결속을 강화하는데 소용되며, 행여 균열이 생길 땐 조율의 역할을 요구받는다. 그러나 사회적 관계로부터 차단되고, 오직 가정 내에서의 관계와 역할만이 주어진 여성에게 남편은 유일한 ‘타자’이다. 사랑을 쏟을 대상이자 인정을 받아내고 싶은 존재이며, 현실적으로는 아들을 출산하여 자신의 자리가 굳히기 위해 성관계를 성사시켜야 할 대상이다. 물론 여기서 남편이 아내에게 성적 매력을 느낀다면 모든 과정이 순탄하다.

그러나 선영은 장애여성으로 남편의 눈길조차 받기 힘들고, 그녀를 볼 때마다 극단적인 자신의 선택과 불우한 처지가 떠올라 증오심이 일어나는 남편으로 인해 아버지와 남편의 사이는 점점 틀어지지만, 그녀는 그 사이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어 괴롭다. 그 와중에도 그녀가 남편을 사랑하는 건 그녀가 바보이거나 ‘너무 착해서’가 아니다. 완벽하게 고립된 그녀에게 남편은 일생 유일하게 본 남자로 연정의 대상이기도 하지만, 사랑하고 사랑받을 것이 요구되는 합법적 존재이자, 삼종지도를 교육받은 사대부 여성인 그녀로서 마땅히 존중해야할 ‘하늘’이기 때문이다. 만약 그녀가 건강한 몸을 지녔다 해도 구도가 크게 달라지진 않는다. 다만 아버지와 남편 사이의 갈등을 남편의 사랑을 지렛대로 활용하여 중재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을 것이다. 그녀의 무력함의 본질은 가부장적 정략결혼에 낀 사대부 여성의 무력함이며, 그녀가 다른 여성들보다 더 무력한 점은 중증장애 여성으로서 남편의 사랑을 전혀 받지 못한다는데 있다.

여기서 그녀의 장애에서 무엇이 핵심인가 하는 문제가 도출된다. 그녀의 선천성 뇌병변 장애는 현대사회의 장애와 성격이 다르다. 장애는 신체의 기능 유무를 판단하는 의학적 개념이 아니라, 사회와의 조화 유무를 판단하는 정치적 개념이라는 사실을 다시 상기해보자. 그녀의 장애에서 핵심은 ‘사지가 불편한 것’이 아니다. 그녀가 ‘지체-부자유자’로 이동이 불편하거나 노동을 할 수 없다는 건 부차적이다. 그녀는 반가의 규수로 몸이 불편하지 않아도 출타는 제한적일 것이며, 하더라도 가마를 탈 것이기에 ‘지체-부자유’는 문제가 되진 않는다. 노동도 할 필요가 없다. 그녀의 깔끔한 쪽진 머리, 세수, 의복, 식사, 목욕, 배변, 청소, 취침 등은 모두 이 드라마가 주목하는 노비의 노동에 의존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대부분의 시간을 반가의 규수답게 방에서 책을 읽으며 지내는데, 그녀는 지적 장애인이 아니므로, 일상생활에 본질적인 장애가 없다고도 할 수 있다.

그녀가 가장 큰 장애를 느끼는 것은 남편과의 관계이다. 언어장애가 있어서 말을 전달하기 어렵지만, 귀를 기울이면 못 알아들을 정도는 아니다. 문제는 남편이 그녀에게 귀 기울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녀에게도 성적 욕구가 있고 생식능력이 있음이 암시되지만(“그런 병이라도 애를 낳을 수는 있다던데…”), 남편은 그녀와 성관계를 갖지 않는다. 남편이 그녀를 외면하는 이유는 첫째, 장애를 불길하고 오염된 것으로 간주하는 성리학적 이데올로기가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고, 둘째, 장애여성이 심미적 대상이나 성적 욕망의 대상이 되기 어려운 미학적·섹슈얼리티적 감각의 논리가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남편 개인의 심리적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감각의 문제이다. 남편에게 복수하기 위해 그녀의 방에 침입한 천지호는 그녀의 장애를 확인하자 “너를 죽이면 남편이 시원해할 것 같아서, 복수가 아니라 도와주는 셈이 될 까봐 죽이지 않겠다”고 말한다. 그녀는 이후 자살을 시도하지만 “혼자서는 죽을 수도 없음”에 슬퍼한다. 이때가 그녀의 장애가 기능적으로 문제가 된 극히 예외적인 경우이다.

괴한이 한눈에 보고서 남편이 그녀를 사랑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판단할 정도로 사회적 공통감각이 형성되어 있으며, 성적 대상이자 모성의 담지자로서 고정된 여성의 역할이 폭력적으로 적용·관철되는 것이 바로 그녀가 느끼는 진정한 장애이다. 즉 그녀의 장애는 신체적이거나 기능적인 것이 아니라, 사회적이고 심미적인 것이다. 그녀의 자리에 얼굴기형이나 화상으로 인한 심한 추녀를 대입해 봐도 크게 다르지 않다. 정략결혼의 매개항으로 존재하며 사랑의 가능성이 봉쇄당한 여성, 외부와 철저히 고립된 채 남편의 사랑과 관심을 갈구하지만 외면당하는 소외된 여성의 불행으로 일반화가 가능한 것이다. 이를 좀 더 확장시켜보면 사대부가에서 남편으로부터 여러 가지 이유로 소박을 당한 여성들의 경험과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본질적인 차이는 없다.

정리하자면 노비, 추노꾼 등 주목받지 못했던 피억압계층의 살아 꿈틀대는 저항의 에너지를 담은 이 드라마에서, 가장 꼼짝달싹할 수 없는 피억압자는 사대부 장애여성이다. 선영은 최고위층의 딸이지만, 여성과 장애라는 이중의 억압에 의해 오직 자살할 자유를 꿈꾸며 방안에 갇혀있는 가장 소외된 자이다. <추노>는 그녀가 홀로 몸을 뒤틀며 찡그리는 얼굴을 정면 샷으로 길게 담으며, 자막과 오버 보이스를 통해 그녀의 목소리를 온전히 전한다. 이 하위주체(subaltern)의 오롯한 목소리를 통해 드라마는 “전반적으로” 흐르는 “양반 상놈”하는 거시적인 신분질서보다, 여성과 장애라는 미시적 억압이 훨씬 벗어나기 힘든 제약이었음을 역설한다.

<추노>가 던진 조선시대 사대부가의 중증장애 여성이라는 화두는 결코 녹록치 않다. 이를 계기로 현재 한국사회의 47만 명의 장애여성의 존재와 이들을 묶고 있는 여성과 장애라는 이중의 억압 장치에 관심이 기울여지길 바란다. 아울러 이 두개의 억압 장치가 섹슈얼리티적 감각의 논리로 단단히 결합되어 있다는 사실과, 미시적 억압의 폭력성이 더욱 심도 있게 논의되길 바란다.


* 이 글은 <수유너머 Weekly> 13호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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