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코 잊힐 수 없는 2011 ‘도가니 정국’ 3개월
[여준민의 탈시설 이야기] “쫄지 말고, 다시!”
2012년 02월 14일 (화) 10:36:17 여준민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상임활동가 webmaster@cowalknews.co.kr

영화 ‘도가니’의 황동혁 감독님께

 

황 감독님과는 고작 한 번뿐인 대면이었지만, 이렇게 편지를 쓴다는 것이 그리 쑥스럽지는 않네요. 아마 하는 일은 달라도 같은 주제를 갖고 고민했다는, 처지가 주는 동일함이 좀 편하게 인사드릴 수 있게 하는 듯합니다.

기억하시죠? 지난 12월 22일, 제가 활동하는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의 후원콘서트에 초대 손님으로 나오셔서, 저희 김정하 활동가와 함께 영화 ‘도가니’가 가져온 사회적 파장과 앞으로의 과제 등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셨죠.

 

그날도 말씀드렸지만, 우리 모두 참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정부 당국, 사법부, 언론, 지역유지, 그리고 학교와 시설관계자 간 침묵의 카르텔에 흠집을 내신 거니까요. 그걸 계기로 저희는 몇 년 전부터 주장해온 「사회복지사업법」 개정운동을 힘차게 전개할 수 있었습니다. 호기라 생각한 거죠. 일반 시민이 이렇게 분노하고 뭔가 대책이 나와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일 때 시스템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2012년 12월 29일! ‘공익이사’란 표현이 ‘외부인사’로 탈바꿈하기는 했어도, 드디어 1/3 도입과 ‘보호’라는 기존의 규정에서 ‘사회복지서비스 제공’으로 모든 용어가 변경되면서, 공적 책임 영역을 담당하는 사회복지법인과 시설의 공공성과 책임성 강화를 골자로 한 「사회복지사업법」 개정안이 통과되었습니다. 아쉬움이 있지만 생각해보면 참 모두의 간절한 마음과 행동이 이뤄낸 ‘기적’ 같은 일입니다.

 

7년간의 외침에 귀 기울이지 않고 외면한 우리 사회가 딱 3개월 만에 그간의 요구안을 받아들였습니다. 아직 ‘탈시설-자립생활’운동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미흡하고 또다시 과제가 남아있지만, 법안 개정 운동 과정에서 많은 성과가 있었습니다.

 

일단 법안 개정 싸움을 어떻게 시작했는지, 어떤 내용인지, 여론은 어떻게 변해갔는지, 공고한 권력을 행사했던 사회복지법인들은 어떤 입장이었는지 궁금하시죠?

 

9월22일 영화 ‘도가니’가 개봉을 하고 난 일주일 뒤, 저희와 함께 활동하는 임성택 변호사에게서 한 통의 전화가 왔습니다. “우리 뭔가 해야 하지 않아?” 반가웠습니다. 뭔가 해야 할 것 같은 때, 깃발을 꽂아주신 격이었으니까요.

 

그렇게 일명 「사회복지사업법」 개정을 위한 활동을 시작하기로 결의한 거고, ‘광주 인화학교 문제 해결과 사회복지사업법 해결을 위한 도가니 대책위원회’, 일명 ‘도가니 대책위’가 구성,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 ‘도가니 대책위’는 많은 활동을 참 발 빠르게, 그리고 숨차게 이어왔습니다.

 

10만인 청원 서명운동과 선전전부터 시작해, 광주에서 올라온 인화학교 졸업생들과 광주 쪽 대책위 활동가들, 그리고 공지영, 여균동 등이 참여한 ‘도가니 문화제’, 광화문 1인 시위, 광주대책위 분들과 함께 한 종각에서의 1박2일 노숙투쟁, 기자회견, 보건복지위 국회의원실 방문 설명, 전체 국회의원 대상 찬반 설문, 3당과 대책위가 내놓은 사회복지사업법 개정(안) 토론회, 사회복지법인협의회 주최로 열린 ‘사회복지법인 및 사회복지시설 정체성 확보를 위한 범사회복지 전진대회’ 보이콧, 종교단체 주관의 ‘사회복지사업법 개정안 토론회’에서 공익이사제 1/3 이상 도입 반대 움직임에 항의, 전국의 사회복지학 교수 셩명서 발표 조직, 사회복지사협회의 지지 선언 조직 등, 딱 세달 동안은 거의 모든 것 다 내려놓고 ‘도가니 정국’을 이어가는 데 주력했습니다.

 

이 분위기에 정치권과 정부 당국도 서둘러 대책 안을 내놓기 시작했지요. 그런데 정부의 대책이라는 게 고작 ‘장애인생활시설 인권상황 실태조사’ 중심이고 성폭력에 초점이 맞춰지고 있었습니다. 사태의 핵심을 ‘작은 청각장애인 학교에서 벌어진 나쁜 교사들의 성폭력 문제’로 축소하려는 시도였습니다.

 

인권상황 실태조사도 준비가 덜 되어 있었습니다. 목적을 분명히 갖고 꼼꼼히 진행된 것이 아니라서 계획대로 연말까지 완료되지 못했고, 결과도 흐지부지돼버렸습니다.

 

이런 인권감수성을 갖고 실태조사를 했으니, 「장애인차별금지법」에 명시된 ‘괴롭힘 등의’ 조항에 맞는 내용은 하나도 담겨있지 않았습니다. 눈에 보이는 폭력과 성폭행이 없으면 아무 문제 없다고 치부해버리는 거죠. 법에 명시된 ‘방임, 방치’가 장애를 가진 거주인들에게는 심각한 인권침해임에도 전혀 인정되지 않았습니다.

 

눈에 보이는 폭력과 성폭력만 인권침해라는 정부의 인식이 바뀌지 않는 한, 실태조사는 새로운 대책을 만들 수 있는 근거가 될 수 없습니다. 그저 분노의 도가니에 휩싸인 시민을 잠재우기에 급급한, 기만적인 처사일 뿐입니다.

게다가 정작 공고한 권력을 행사하는 규모가 큰 법인 시설은 건드리지도 못했습니다. 미신고시설은 올해까지 유예를 두어 심각한 인권상황이 존재하고 기준에 맞지 않으면 폐쇄해야 하는 당연한 대상 시설이고, 개인운영신고시설 또한 그 미신고시설들이 설치물 등 기준이 완화되어 제도권으로 편입된 작은 시설들입니다. 지역과 뿌리 깊은 유착관계가 형성된 법인과 공고한 희생과 봉사정신만 강요하는 일부 종교시설은 저항이 두려운지 시작도 못 했습니다.

 

그런데 분명히 변화된 상황은 있는 듯합니다.

 

지난 10월27일, 마포에 있는 사회복지회관 6층 강당에서는 약 200여 명의 전국 장애인, 아동, 노인, 부랑인, 여성 등의 시설을 운영하는 운영자들의 모임, 일명 ‘사회복지법인협의회’ 주최로, ‘사회복지법인 및 사회복지시설 정체성 확보를 위한 범사회복지 전진대회’가 열렸습니다.

 

저희는 꽤 긴장했습니다. ‘드디어 저항세력들이 집단적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구나!’ 싶어서지요.

 

‘도가니 대책위’는 이날 약 1시간가량 단상에 올라가, 올바른 사회복지사업법 개정에 다 함께 힘써 달라고 간곡히 당부하며, 시설운영이 ‘사람장사’로 변질해서는 안 됨을 호소했습니다. 하지만 참석한 시설장들은 큰소리를 지르며 험악한 분위기를 만들었습니다. 참, 말도 안 되는 어처구니없는 말들이 오갔지요.

 

상상이 되세요? 희생과 봉사로 일하고 있으며, 사회는 위험하고 그래서 보호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그들이 던진 말들입니다.

 

“장애인 안 해, 그만해, 너희가 다해! 장애인 너희가 가져가!”

“참 뻔뻔하네, 그만하고 조용히 나가!”

“국가에서 나오라고 해! 국가에서 직접 하라고 해!”

“쟤 끌어내! 뭐하는 거야 이게! 장애인 너희가 가지고 가!”

“장애자들, 너무 배불리 해줬어.”

“전문가들이 여기 다 모여 있는데 말이지, 어디서~.”

 

그런데 이뿐만 아니었습니다. 전직 사회복지학 교수이면서 전직 복지부 장관 출신이기도 한 차흥봉 씨는 “이런 사태가 벌어질 것을 우려했습니다. 이 자리는 사회복지가 더 큰 도약을 하기 위해 마련된 자리입니다. 지금 인화학교 때문에 우리의 목숨을 건드리고 있습니다. 근본을 건드리면 다 무너지는 것입니다. 절대 흔들려서는 안 됩니다. 이는 우리 사회복지계의 정체성의 위기입니다”라며 모인 법인 시설장들을 선동하고 있었습니다.

 

1시간 동안, 정작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처지에서 법안이 개정되어야 한다고 그렇게 애원하며 목소리 높였건만……. 그곳에 모인 법인 시설장들은 자신의 재산권과 설립 목적과 이념을 거론하며, 공익이사 반대에 의견을 모으고 있었습니다.

 

보다보다……참담한 심정으로 회의장을 나왔습니다. 100% 국민의 혈세로 운영되는 사회복지법인 ‘시설’을 사적 재산으로 이해하고 있었고, 국가의 역할을 대신하고 있으니 그저 지원만 하고 간섭하지 말라고 주문하고 있었습니다. 탈근대를 이야기하는 요즘, 그들은 전근대적인 모습으로 세상을 거꾸로 이해하며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기득권을 계속 행사하겠다는 속셈이지요. 그 틈의 균열을 어떻게 낼 것인지, 동시대를 어떻게 함께 살아갈 것인지 참으로 고민스러웠습니다.

 

그래도 여론은 이들도 어찌하지 못했습니다. 의원실을 방문해 법안 설명을 했더니, 다들 분위기에 편승하는 모습을 보이며 “공익이사 도입이 어렵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법인 측에서 자꾸 찾아오지만, 이번에는 어렵지 않겠냐는 반응들이었죠.

 

하지만 이게 한나라당의 꼼수였다는 것을 뒤늦게 알아차렸습니다. 법안소위에서 한나라당(특히 윤석용 의원)은 여전히 “왜 공익이사, 개방형 이사라는 표현을 써야 하냐!”라고 반대해 결국 ‘외부인사’로 규정되었습니다. 또 전문위원들은 예산 타령하며 ‘탈시설-자립생활’ 규정을 뺀 채 의견서를 올렸고, 결국 국회의원들은 이 조항은 논의하지도 않았습니다. 사실 ‘도가니 대책위’는 법인과 정부의 저항이 당연한 ‘탈시설 개념’ 규정을 핵심 사안 중 하나였어요. ‘탈시설’이란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되어가고 있지만, 괜히 서로 차분히 논의하지도 못한 채 용어의 낯섦으로 저항만 부를까 봐 전략적으로 부각하지 않은 거죠. 아무튼, 가장 아쉽고 또 과제로 남은 내용입니다.

황 감독님! 근데 참 마음이 이상합니다. 기쁘지만 마냥 기뻐하기가 뭐합니다. 뭐라 설명할 수 없습니다.

2005년 인화학교 문제가 터졌을 때 삭발투쟁, 천막농성을 이끌었던, 가장 선두에 계시던 분이 계세요. 윤민자 선생님. 그분의 자녀가 장애가 있지요. 부모로서 도저히 넘겨버릴 수 없어 밤낮으로 눈물로 싸웠던 분입니다. 지금 그분은 미국에 계십니다. 처절한 싸움에서 피가 낭자한 채, 배반당한 한국 사회에 일침을 가하듯, 이민을 하셨습니다. 29일 법안이 통과되었다는 소식을 들으시고 페이스북에 글을 남기셨습니다. 눈물이 앞을 가린다고…….

모든 활동가가 그간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간다고 담담히 말하지만, 그 속에는 패배감과 절망, 희망이 뒤섞여 있습니다.

 

얼마 전 국가인권위가 인화원을 직권조사했지요. 그때 민간조사관 자격으로 참여해서 2박3일 거주인들과 함께 있었습니다. 오래된 방임, 방치로 퇴행한 상황이 역력했고, 거주인 간 위계 때문에 사람들은 스트레스에 고개 숙이고 있었습니다. 여성거주인 중 머리를 기른 사람은 두, 세 사람뿐이고, 약물에 취해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분도 계셨습니다.

 

조사 후 인화원이 폐쇄되면서 그분들은 여성, 남성 나뉘어 다른 시설로 옮겨 가셨습니다. 어떻게 사시는지 궁금해, 얼마 전 민간조사관이었던 활동가들이 다시 광주로 내려가 찾아뵈었습니다. 제가 인터뷰를 했던 한 분은 원망 어린 눈으로 저를 보자마자 엉엉 우셨습니다. 가족도 없고 40년을 넘게 인화원에서 살았고, 한글도 모르고, 듣지만 말은 못하고……. 바깥 사회란 전혀 경험해 본 적이 없으니 갑작스러운 거주 이전이 불안했던 거죠. 저는 거의 한 달 만에 찾아갔고. 죄송스런 마음에 고개를 들지 못했습니다. 본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이 시설에서 저 시설로, 여전히 시설생활에서 벗어날 길 없는 현실이 답답하고 슬퍼 한참을 함께 울었습니다. 공무원들은 처음에만 얼굴을 들이밀고 전혀 나타나지 않았고, 지금의 시설에 인화원 출신 재활교사 5명이 들어와, 통제 중심으로 일관하고 있으니…, 다시 인화원을 옮겨 놓은 것에 지나지 않은 상황입니다.

 

왜 이렇게 뭐 하나 말끔히 정리되는 일이 없을까요? 인화학교, 인화원, 폐쇄되었다 해도, 제가 보기에 숨겨진 ‘도가니’는 여전히 곳곳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이번 개정안이 도화선이 되어 하나하나 실제적인 거주인들의 권리를 보장해 가겠지만, 역시 절반의 승리라고 볼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시설이 아닌 마을에서 함께 살아가는 게 보편적 사람살이의 모습이고 국가는 그 책임이 있으니까요.

 

이야기가 두서없이 길어졌습니다. 차기 작품은 밝고 사회성 있는 작품이면 좋겠다고 하셨는데, 일단 좀 쉬시고 두루두루 살피시길 바랍니다.

그날 콘서트 현장에서 ‘탈시설’이란 개념을 처음 들었다고 하셨죠? 앞으로는 대세가 될 겁니다. 그러니 분명히 기억해 주세요.

 

법안 개정까지 바쁘게 온 3개월. 덕분에 힘겨워도 즐거운 투쟁이었습니다. 승리의 여명을 확인하며 걸어온 길이었습니다. 참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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