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장애등급제’가 그의 집에 불을 질렀다!   

장애등급심사 때문에 불길로 내몰린 송국현 씨 쾌유를 빌며

2014.04.14 15:53 입력

 
13일 일요일 오후 1시. 편집국 카톡방에 날아온 메시지. “성동장애인자립생활센터 체험홈에 사는 송국현 씨 집에 불이 났대요. 국현 씨는 3도 화상을 입었고, 급하게 화상전문병원으로 이송했다고 합니다.”

 
송국현. 낯익은 이름이다. 지난주 목요일(10일), 그는 서울 광진구에 있는 국민연금공단 장애심사센터 앞에 있었다. 장애등급심사 피해자에 대한 긴급대책을 요구하는 장애인단체의 기자회견에 참여하기 위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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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일 장애심사센터 앞 기자회견에서 송국현 씨의 모습.
 
올해 51세인 송 씨는 뇌병변, 언어 중복 장애인으로, 27년 동안 장애인생활시설에서 지내다가 지난해 장애인인권단체의 도움을 받아 시설을 나오게 됐다.
 
 
러나 시작부터 벽에 부딪혔다. 1, 2급 장애인에게만 서비스 신청자격을 부여하는 현행 장애인활동지원서비스는 '장애 3급'인 그에게 접근조차 허용하지 않았다.
 
 
그는 일상생활을 해 나가는데 활동지원서비스가 꼭 필요했기에 장애등급심사를 다시 받았다. 하지만 장애심사센터는 올해 2월 초 아래와 같은 결정 이유를 덧붙이면서 또다시 장애 3급 판정을 되돌려줬다.

 
“제출된 자료상 2012.10월 판정 후 악화 소견 확인되지 않는 점, 치료경과 등을 고려할 때 뇌의 기질적 병변으로 인한 팔다리의 기능 저하는 보행과 대부분의 일생생활동작을 타인의 도움 없이 자신이 수행하나 완벽하게 수행하지 못하는 상태로…”

 
‘일상생활동작을 타인의 도움 없이 자신이 수행하나’라는 판단은 뇌병변장애인의 일상생활능력을 의학적으로 평가하는 수정바델지수에 따른 것이다. 그러나 이런 의학적 판단은 “밥통에 쌀을 씻어 통을 들어야 하는데 팔의 힘이 없다”, “혼자서는 목욕, 빨래, 양치질을 할 수도 없었다”, “물건을 사는데도 혼자서 할 수 없고, 사람들에게 부딪히면 넘어지기 일쑤”라고 송 씨 스스로 고백한 생활상의 어려움을 전혀 반영하고 있지 않았다.

 
이 때문에 송 씨는 시설에서 나온 뒤 지금까지 장애인자립생활센터가 자체 예산을 들여 지원한 활동보조인과 자원활동가들의 도움으로 버텨왔다. 하지만 그것도 이제 한계에 도달했다. 결국, 그는 지난 10일, 자신과 비슷한 어려움을 겪고 있던 인천의 민병욱 씨(민 씨는 장애등급재심사 결과 1급에서 5급으로 떨어졌다)와 함께 장애심사센터에 긴급대책을 요구하기 위해 찾아갔다. 그러나 장애심사센터는 민원신청에 의사소통조력인이 들어오지 못하게 하려는 등의 태도를 보이다가 결국 민원신청 자체를 무산시켰다.
 
 
그리고 나흘 뒤, 함께 살던 장애인이 외출한 후 송 씨 홀로 있던 집에서 불이 났다. 활동보조인이 함께 있었다면 응급조치를 하고 피할 수 있었겠지만, 혼자서는 거동이 힘든 그는 미처 불길을 피하지 못했다.

 
나는 이날 오후 5시경 중환자실에 입원한 송 씨를 보러 달려갔다. 그는 배와 등 일부를 제외하고 얼굴과 가슴, 팔과 다리에 모두 붕대를 감고 누워 있었다. 소식을 듣고 달려온 장애인단체 활동가들과 지인들은 면회시간이 다 끝날 때까지 중환자실 앞을 떠나지 못하고 서성였다. 송 씨와 같이 시설 생활을 하다 탈시설 한 동료들도 여럿 찾아왔다. 이 중 ‘1급’ 장애인들 대부분은 활동보조인과 함께하고 있었다.

 
정확한 화재 원인은 아마 며칠 내로 경찰 조사에 의해 밝혀질 것이다. 그러나 경찰이 찾게 될 ‘화재원인’도 어쩌면 또 다른 ‘결과’에 불과할지 모른다. 진짜 화재의 원인은 경찰의 ‘과학수사’로도 밝힐 수 없는 전혀 다른 곳에 있기 때문이다. 나는 평소에 이런 식의 환원론을 좋아하지 않지만, 이번 사건 만큼은 ‘장애등급제’가 송 씨의 집에 불을 지른 방화범이라고 단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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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화재로 송국현 씨가 살던 자립생활 체험홈이 모두 불에 탔다.

 
2010년 당시 정부는 복지예산을 갉아먹는 ‘가짜 장애인’을 잡겠다며 장애등급재심사를 전면적으로 실시했다. 이때 무려 36.7%의 장애인이 등급 하락을 겪어야 했다. 장애인복지서비스 지급이 등급에 따라 차등화된 상황에서, 등급하락은 곧 장애인의 생존권 박탈을 의미했다. 이에 당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등 장애인계는 장애심사센터를 5일간 점거하며 강하게 반발했다.

 
이들이 당시 점거를 통해 요구한 것은 단순히 ‘등급 하락 반대’가 아니라 ‘장애등급제 폐지’였다. 정부에서는 장애가 더 심한 사람에게 많은 서비스를 주기 위해서는 등급제가 불가피하다고 말했지만, 그것은 복지를 장애인의 몸에 맞춘 것이 아니라 한정된 예산에 맞추기 위한 제도였다. 장애인계의 요구에 박근혜 대통령도 대선 후보 당시 ‘장애등급제 폐지’를 공약으로 내걸었지만, 여전히 약속은 지켜지지 않고 있다. 오히려 박 대통령은 기회가 날 때마다 ‘복지 부정수급’ 문제를 탓하며 예산 누수 방지만을 강조하고 있다.

 
최근 <비마이너> 기사에 부쩍 자살 기사가 많아졌다. 한 장애인단체가 조사한 바로는 3월 한 달간 장애인 자살사건이 언론을 통해 알려진 것만 16건이었다. 여기에 알려지지 않은 사건과 송국현 씨처럼 사실상 ‘사회적 살인 미수’에 해당하는 경우까지 포함하면 장애인에 대한 대량 학살이 벌어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학살의 중심에 장애등급제가 있다. ‘예산 절감’을 이유로 개별 장애인의 사회적 환경을 고려한 복지 서비스를 제공할 정부의 책임을 방기하고, 의학적 기준만으로 장애인을 1~6급으로 나눈 채 이들을 지역사회 바깥으로 내모는 21세기 아우슈비츠가 부활한 것이다. 이 흉악한 제도가 송국현 씨 집에 불을 질렀다. 중환자실에서 힘겨운 사투를 벌이고 있는 그의 빠른 쾌유를 빈다.
 
 
 
* 이 글은 미디어오늘에도 실렸습니다.


 
하금철 기자 rollingstone@bemino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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