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나’는 여전히 형제복지원에 감금되어있다   

형제복지원 피해자 증언대회, 국회에서 열려
피해자 가족은 풍비박산, 제대로 된 삶 영위조차 어려워

2014.04.08 21:19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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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홀로코스트: 형제복지원 피해자 증언대회'가 8일 오전 10시 국회 의원회관 제3 세미나실에서 진선미 의원 등의 주최로 열렸다. 형제복지원 피해자가 당시 구타로 팔이 부러진 뒤 제대로 치료받지 못해 한평생 팔이 뒤틀린 채 살아가고 있다고 증언하고 있다. 

 

 

집 앞에서 놀던 국민학교 4학년 아이도, 공부만 열심히 하던 중1 학생도, 새로 이사 간 집을 찾지 못해 파출소에 물으러 갔던 열세 살 아이도, 모두 그곳으로 끌려갔다. 

 

 

그곳은 누군가 죽으면 죽은 이의 누더기를 서로 챙기기 위해 달려드는 곳이었다.
 

죽은 지 오래된 시체에서 ‘인’이라는 것이 나온다며, 그것이 몸에 좋더라며 입에 넣던 곳이었다. 살아 있는 것은 뭐든지 먹었다. 단지 배가 고팠을 뿐이다.

 

 

문 안에 들어서자마자 사람들을 마구잡이로 패길래 처음엔 무서웠는데, 오래 지내다 보니 맞지 않는 날이 되려 이상할 정도였다. 물론 맞지 않는 날은 없었다. 단지 ‘조금 덜’ 맞는 날이 있었을 뿐이다.

 

 

그곳은 부산 형제복지원이었다.

 

 

# ‘오늘의 나’를 지배하는 ‘형제복지원’

 

 

형제복지원 피해자 증언대회가 8일 이른 10시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렸다.

 

 

이날 증언자들은 살아보려고 노력했으나 살아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곳에서 얻어터진 흔적이 몸 이곳저곳, 관절 여기저기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누구는 비틀어진 팔을 내보였다. 그렇게 팔은 여전히 비틀어져 있었고 치아는 뒤틀려 있었으며 디스크가 몸 곳곳에서 그때의 고통을 반복했다. ‘지금의 나’는 “사회에 대한 증오심만 남은 인간이 되어 목숨만 붙어”있는 채 여기 살아 있다.

 

 

과거 몇 년의 기억이 여전히 ‘오늘의 나’를 지배했다. 그리하여 개처럼 패대기쳐졌던 나는, 인간으로 회복되지 못한 채 분노와 증오로 살아 왔던 나는, 실은 간절히 ‘인간’으로 살고 싶었다. 깊숙이 파고든 이 고통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배운 것 없고 가진 것 없는 나’의 목소리를 들어주는 사람은 없었다.

 

 

그 사이 ‘나’와 함께 형제복지원에 끌려갔던 ‘내 동생’은 3년 전 자살했다. 또 다른 ‘나’의 ‘동생’ 역시 알코올중독으로 살다가 사고 후 지적장애인이 되었다. 어머니는 어린 시절 하루아침에 사라진 나와 내 동생을 찾아 헤매던 그때의 충격으로 치매에 걸렸다. 아버지 또한 ‘내’가 형제복지원에 감금되어 있던 사이, 전국을 뒤지다 결국 돌아가셨다.

 

 

겨우겨우, 나는 살아 돌아왔으나 모든 것은 이미 돌이킬 수 없었다. 그럼에도 살아 있는 한 삶은 지독하게 계속됐다.

 

 

‘나’는 성인이 되었다. 그러나 학교 갈 나이에 형제복지원에서 개처럼 맞고 지낸 시간은 내게 ‘가방끈’ 대신 일할 수 없는 몸뚱이만을 남겨주었고 ‘나’는 자연히 기초생활수급자가 되었다.

 

 

이것은 형제복지원에 감금되었던, 그 안에서 살아갔던 수많은 ‘나’들의 생애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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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도중 울음이 북받친 형제복지원 피해자 김희곤 씨


 

# 피해자 가족은 풍비박산, 제대로 된 삶 영위하기 어려워

 

 

국민학교 4학년이었던 1970년에 형제복지원에 끌려가 1978년까지 그곳에 수용된 김희곤 씨(53세)는 73~4년경 함께 생활했던 동료가 구타로 사망했다며 이름과 함께 죽어가던 모습까지 생생히 증언했다.

 

송기훈이라는 친구였어요. 나보다 두어 살 많았는데 전날 탈출하려다 들켜서 엄청 맞았죠. 아침에 일어나 집합하러 가다가 갑자기 쓰러져 죽었어요.” 

 

 

김 씨는 가족들이 찾아와 1978년 그곳에서 나오게 된다. 김 씨는 그때 자신이 번 돈이라며 원장으로부터 4만 2000원을 받았다고 한다.

 

 

“어린 시절을 빼앗기고 청소년기를 말살 당했는데 4만 2000원 받았어요. 형제복지원에서 다섯 정거장만 가면 우리 집인데 그 길 가는 데 9년 걸렸습니다. 집에 가니 76년도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데요. 절 찾으러 전국 방방곡곡 돌아다니셨다고….”

 

 

결국 가족들 뵐 면목이 없어 김 씨는 평생을 혼자 떠돌며 산다. 가족이 있음에도 이렇게 사는 게 억울하고, 전부 잊고 살고 싶은데 잊을 수가 없다.

 

 

그 사이 몸은 서서히 마비가 오기 시작했다. 결국 3년 전, 기초생활수급자 신청을 했다. 자신을 이렇게 만든 국가로부터 도움받기 싫었지만, 노숙이라도 하면 또 옛날처럼 끌려갈까 무서워 결국 신청했다.

 

 

1982년부터 1986년도까지 수용됐던 최승우 씨 또한 “그날 이후 난 사람이 아니었다”라고 말했다.

 

 

“나는 정말 개였습니다. 거기서 음식 먹으려고 할 때마다 냄새가 역겨워 오바이트 했어요. 그걸 보고 중대장이 몽둥이로 때리면서 ‘먹어, 먹어, 개새끼야’ 해서 먹으면 또 올라오고, 그러면 또 때리고, 못 먹으니 계속 패고.”

 

 

40대 중반의 최 씨는 그곳에서의 일로 이가 다 빠져 20대에 틀니를 했다. 그리고 그와 함께 감금됐던 동생은 평생을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결국 3년 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한종훈 씨 또한 가족이 산산이 무너졌다. 함께 끌려간 동생은 후에 지적장애인이 되고 어머니는 충격으로 치매에 걸렸다. 그리고 이때의 기억은 그의 팔에 오롯이 새겨져 있다.

 

 

2층 침대에 일렬로 물구나무서 있으면 조장이 ‘빳다’를 치기 시작해요. 그런데 어설프게 때리니 그 자리에서 팔이 부러졌어요. 그런데 그 상태에서 계속 때려요. 엄살 부리지 말라고. 다음날 의무소대 갔는데 치료 같은 건 없어요. 빨간약이랑 이상한 약밖에 없고. 결국 팔걸이 하나하고 지내다가 팔이 돌아가 버린 거죠.”

 

 

이날은 피해 유가족도 함께했다. 엄아무개 씨는 자신의 형이 형제복지원에 두 차례 끌려갔으며, 두 번째 입소일을 1986년 7월 29일이라고 기억했다. 그리고 입소 3일 만인 8월 1일, 부산시립병원으로부터 ‘형님 시신을 확인하러 오라’는 연락을 받았다고 밝혔다.

 

 

안치실에 가서 보니 형님이 맞아요. 얼굴이 많이 부어 있었고 심한 멍 자국이 너무 많았어요. 온몸에, 등에도 피멍이 엄청났어요. 누가 봐도 맞아서 죽은 거지. 옆에 있는 형제복지원 직원한테 물어보니 ‘모른다, 나는 그냥 데려가라고 해서 온 거다’ 답하곤 사라졌어요.”

 

 

그러나 형제복지원 측은 사인을 ‘신경쇠약’으로 기록했다. 엄 씨는 당시 부모님께 부검하자고 말했으나, 그의 부모님은 ‘자식을 두 번 죽이는 것’이라며 거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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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홀로코스트: 형제복지원 피해자 증언대회'가 8일 오전 10시 국회 의원회관 제3세미나실에서 열렸다.


 

# 형제복지원특별법, 복지위 아닌 안행위로 재배정해야

 

 

이날 피해자들은 무엇보다 국가의 철저한 진상규명을 요구했다. 국가는 과거사에 대해 책임지고 피해자들 명예회복과 함께 이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최근 형제복지원 사건 진상규명과 피해자 지원에 대한 내용을 담은 ‘형제복지원특별법’의 국회 상임위가 안전행정위원회가 아닌 보건복지위원회로 결정된 것에 대해 강하게 비판하며 안전행정위원회로 재배정할 것을 촉구했다. 이는 단순 복지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범죄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형제복지원대책위 여준민 사무국장은 “최근 당시 수사계장에게 연락이 왔다. 박인근을 전방위적으로 비호하면서 배경엔 청와대도 있었다는 것”이라면서 “그뿐만 아니라 검찰, 부산시장, 내무부 장관 등도 공모자였다”라고 밝혔다.

 

 

여 사무국장은 “박인근 운전기사를 하셨던 분도 만났다. 박인근은 고급 승용차를 타지 않고 언제나 잠바를 입고 형제복지원 트럭을 타고 다녔는데 그 차는 속도위반, 무단주차 등을 해도 아무에게도 걸리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박인근은 그 자체가 권력이었고 수용 정책은 국가에 의해 자행된 너무나 어처구니없는 사건이었다”라고 분노했다. 

 

 

형제복지원대책위 강경선 상임대표 또한 “대책위 조사는 한계가 있다. 이제는 국가 차원에서 예산을 책정해 나서야 한다”라며 “안전행정위원회로 재배정해 과거사 진상규명에 나서라”라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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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언대회에 참석한 형제복지원 피해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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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우 씨가 자신의 경험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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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언대회에 참석한 사람들
 



강혜민 기자 skpebble@bemino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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