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의 열기가 두려워지는 이유
단식농성 시작한 장애인들에게도 관심을
예산 계획도 없는 5개년계획은 잘 될까?

에이블뉴스, 기사작성일 : 2008-08-08 19:06:27

8일 오전 서울 여의도 한나라당 서울시당사 앞에서 장애인들과 부모들이 장애인복지예산 확보를 촉구하며 기자회견을 벌이고 있다. ⓒ에이블뉴스
▲8일 오전 서울 여의도 한나라당 서울시당사 앞에서 장애인들과 부모들이 장애인복지예산 확보를 촉구하며 기자회견을 벌이고 있다. ⓒ에이블뉴스 이미지 자세히보기
8일 오전 11시 서울 여의도 한나라당 서울시당사 앞. 장애인복지예산 보장을 촉구하기 위해 기자회견에 나선 장애인 당사자들과 부모들이 손으로 들 수 있는 크기의 펼침막으로 해를 가리기 위해 애를 씁니다. 아예 머리를 감싼 모습도 보입니다. 다들 여름휴가를 떠나는 현재, 폭염 속에서 기자회견을 열 수밖에 없었던 이들의 사연은 과연 무엇일까요?

장애인활동보조서비스는 중증장애인들에게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제도입니다. 장애인차량 LPG연료 지원제도, 전동휠체어와 전동스쿠터 보험 적용 등에 결코 뒤지지 않은 파급력을 발휘하고 있는 제도가 바로 이것입니다.

활동보조인서비스는 장애인들의 운명을 바꾸고 있습니다. 활동보조인서비스가 없었다면 시설이나 집에서 평생을 보내야만했던 이들을 사회로 나올 수 있게 했습니다. 인간관계를 형성하게 되고, 사회생활을 경험하게 됐습니다. 사람답게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이제서야 알게 됐다는 고백들이 터져 나옵니다.

하지만 대상자와 시간, 자부담 문제는 급히 해결해야하는 과제입니다. 이를 위해 보건복지가족부가 내년도 예산안에서 올해 738억원 보다 508억원이 많은 1,246억원을 요구했는데, 기획재정부가 난색을 표하고 있습니다. 사업의 중요성이나 필요성은 검토하지 않은 채 무 자르듯이 예산을 삭감하려 하고 있습니다.

장애인가족지원제도도 그렇습니다. 현재 장애인가족들은 장애인의 부양에 따른 경제적, 육체적 고통, 미래의 불안에 대한 심리적 고통을 겪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고통을 감당할 수 없었던 많은 장애인가족들은 목을 매고, 뛰어내리고, 불을 질러 자살을 선택했습니다. 장애아를 뒀다는 이유로 죄인처럼 살아가야하는 것이 우리나라 장애인 가족의 현실인 것입니다. 장애인 등에 대한 특수교육법을 만들어낸 장애인부모들은 이제 장애인가족지원제도의 구축에 나섰습니다. 더 이상 방치되는 삶을 살지 않겠다는 심정으로 밖으로 나왔습니다.

현재 장애인가족지원제도의 하나인 장애아동재활치료서비스 사업 예산을 편성하는 문제를 두고 보건복지가족부와 기획재정부가 협의 중입니다. 복지부는 애초 241억원을 편성해 기획재정부에 요구했는데, 기획재정부는 대폭 삭감해 11억원으로 조정했습니다. 이후 보건복지가족부는 장애인계의 요구를 받아들여 326억원을 추가해 총 337억원을 요구하고 협의를 벌이고 있는 중입니다.

지난 4일부터 국가인권위원회 7층 인권상담센터를 점거하고 단식농성을 벌이고 있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전국장애인부모연대,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회원들은 활동보조서비스 1,246억원, 장애인가족지원서비스 337억원은 장애인의 생존권을 위한 최소한의 요구라면서 절대 삭감해서는 안 된다고 촉구하고 있습니다.

결국 예산의 문제입니다. 아무리 좋고, 멋진 제도를 설계해 놓더라도 예산을 확보하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지난 6일 이명박 정부 들어 처음 열린 장애인정책조정위원회에서 확정된 제3차 장애인정책발전 5개년계획이 걱정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정부는 지난 6일 장애인정책조정위원회를 열어서 제3차 장애인정책발전 5개년계획을 확정했다. ⓒ국무총리실
▲정부는 지난 6일 장애인정책조정위원회를 열어서 제3차 장애인정책발전 5개년계획을 확정했다. ⓒ국무총리실 이미지 자세히보기
정부는 이번 계획에서 기초장애연금제도의 도입, 새로운 장애판정제도 수립, 만 3세 미만 장애영아 무상교육, 자막방송 확대, 장애인평생교육 프로그램 운영 등을 주요 과제로 제시했습니다. 장애인계의 반응은 아직 없습니다. 성명서도 없고 논평도 없습니다. 기사 댓글도 적습니다. 왜 그럴까요?

제가 나름대로 그 이유를 생각해봤는데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정부가 밝힌 5개년계획이 얼마나 제대로 지켜지겠냐는 생각으로 아예 관심을 갖지 않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정부는 이번에 수립된 장애인 정책발전 5개년 계획이 차질없이 추진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매년 연도별 추진실적을 점검해나가겠다고 밝혔는데요. 1, 2차 5개년계획에 대한 제대로된 평가 없이 수립된 제3차 계획이 얼마나 효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우리 사회는 최근 몇번의 선거를 치르면서 매니페스토(Manifesto) 운동을 벌였습니다. 이는 뜬구름잡기식의 추상적이고 구체적 실현목표가 없는 공약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재원 조달과 시한, 우선순위 등이 명시된 공약을 제시하자는 운동입니다. 앞으로 정부가 중장기계획을 수립할 때는 이 운동의 정신을 본받아야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정부가 내놓은 중장기계획에는 반드시 예산계획을 첨부해야할 것입니다. 구체적인 추진 과제에 대해 연도별 예산계획과 확보방법을 명시해야만이 장애인들과 국민들이 관심을 갖게 되고, 정부에서도 스스로 구속력을 갖게 될 것입니다.

오늘 만난 장애인계 활동가 한 분은 장애인 정책발전 5개년 계획 수립에 대한 공청회가 열린 것조차 모르고 있었습니다. 장애인계에서 꽤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사람들조차 5개년계획 수립과정을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과연 얼마나 장애인계 의견이 수렴된 것일까요? 6일 열린 장애인정책조정위원회에는 장애인단체장들도 있었는데, 그분들이 얘기한 것들이 반영이 돼서 계획이 확정된 것일까요? 아니면 회의 전에 정리한 내용이 그대로 확정안이 된 것일까요?

그리고 왜 정부는 5개년계획의 전문을 밝히지 않는 것일까요? 모든 국민이 볼 수 있도록 공개해야하는 것이 마땅한데, 정부는 이번 5개년계획을 발표하면서 언론사를 위한 보도자료를 냈을 뿐입니다. 그 보도자료에는 5개년계획에 대한 자세한 설명도 없는, 단순 요약 내용만 들어있었습니다. 홈페이지를 통해 전문을 공개하면 왜 안 되는 것인가요?

장애인계는 그동안 입법운동을 많이 벌였습니다. 장애인차별금지법도 만들었고, 장애인 등에 대한 특수교육법도 만들었습니다. 두 법은 특히 장애인계에서 초안까지 짜셔 국회로 보낸 것입니다. 법안 초안도 만들고, 국민적 공감대 형성을 위한 운동도 벌이고, 국회의원들 로비도 벌였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장애인의 손으로 만든 것입니다.

그런데 그 법이 제대로 시행되고 있는지까지 장애인들의 몫으로 다가옵니다. 예산 확보를 위해서 싸우지 않으면 법은 시행되지 않는 것이 현실이라는 것입니다. 정부 정책도 그렇고, 법도 그렇고 두눈 부릅뜨고 감시하는 사람들이 없으면 작동이 되지 않은 것이 대한민국의 현실인가 봅니다.

2008년 여름의 한 가운데. 한끼만 굶어도 쓰러질 것 같은 폭염 속에서 단식을 해야하고, 점거농성을 하고, 기자회견을 벌이고, 시위를 해야하는 장애인들이 있습니다. 어쩌면 이들의 몸부림은 오늘 개막하는 올림픽의 열기 속에 묻혀버릴 지도 모릅니다. 이상 제29회 베이징올림픽이 개막하는 8월의 둘쨋주 에이블뉴스 주간브리핑이었습니다.

장애인들과 부모들은 장애인복지예산 확보 문제로 현재 국가인권위원회를 점거하고 단식농성을 벌이고 있다. 사진은 기획재정부 앞 집회. ⓒ에이블뉴스
▲장애인들과 부모들은 장애인복지예산 확보 문제로 현재 국가인권위원회를 점거하고 단식농성을 벌이고 있다. 사진은 기획재정부 앞 집회. ⓒ에이블뉴스 이미지 자세히보기


소장섭 기자 ( sojjang@ablenews.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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