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11.16 18:56 입력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 공동행동(아래 공동행동) 대표단이 오는 21일 오전 보건복지부(아래 복지부) 임채민 장관과 면담한다고 합니다. 백여 명의 공동행동 장애인활동가들이 고 김주영 활동가의 영정을 들고 지난 1일 유엔 에스캅 장관급회의가 열리는 송도를 찾아 다섯 시간 넘게 대치한 끝에 얻어낸 자리입니다.
과연 임 장관이 장애등급제 폐지, 부양의무제 폐지, 24시간 활동보조 보장 등 공동행동의 핵심 요구에 부응하는 답변을 내놓을까요? 그보다는 지난 7월 발표한 발달장애인지원계획, 지난 9월 내년도 정부예산안을 국회에 제출하면서 발표한 내용을 마치 새로운 대책인양 내놓지 않을까 저어됩니다.
발달장애인지원계획과 내년도 정부예산안을 보면 정부는 이미 활동지원서비스 신청 자격을 현행 1급에서 2급으로 확대, 현재 성인의 절반 수준에서 제공하는 활동보조 시간을 성인 수준으로 제공키로 했습니다.
그런데 복지부가 활동지원서비스를 확대하는 계획을 세운 이면에는 활동지원서비스 예산 불용이라는 문제가 있습니다.
지난 12일 김용익 의원(민주통합당)이 발표한 자료를 보면 활동지원서비스 예산은 지난해 300억 원에 이어 올해는 800억 원을 다 쓰지 못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올해 활동지원서비스 예산이 3100억 원 정도이니까, 800억 원이라면 무려 25%의 예산을 집행하지 못한 것입니다.
복지부는 지난 2009년 당시 활동보조지원사업의 예산이 다 떨어졌다며 신규 신청을 금지하는 지침까지 내린 바 있습니다. 그런데 불과 3~4년 사이에 활동지원서비스 예산을 다 쓰지 못해 전전긍긍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이미 수차례 장애인계에서 지적한 바 있습니다. 활동지원서비스를 새로 신청하려면 장애등급 재심사를 받아야 합니다. 만약 장애등급 재심사를 받아 장애등급이 하락하면 활동지원서비스는커녕 기존에 받던 서비스에서 탈락할 수 있습니다. 재심사를 위해 병원에 내야 하는 비용 부담도 큽니다.
파주 화재 사건으로 현재 뇌사상태인 장애인 남매의 남동생도 부모가 활동지원서비스를 신청하려다가 결국 이 같은 이유로 포기했다고 합니다.
게다가 본인부담금 부담이 큽니다. 장애인 본인이 소득이 없더라도 기초생활수급가구가 아니라면 본인부담금을 내야 합니다. 결국 그 본인부담금은 가족에게 전가됩니다.
즉, 예산을 통제하는 수단인 장애등급 재심사와 본인부담금 등을 그대로 둔 채 활동지원서비스 신청 자격을 2급으로 확대하고 아동에게 성인 수준의 활동지원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은 예산 불용을 줄이기 위한 복지부의 궁여지책일 따름입니다.
현재 한 중앙 일간지의 집중적인 보도에 힘입어 파주 장애인 남매 가족에 후원이 쇄도하고 있다고 합니다. 발달장애가 있는 누나가 뇌병변장애 남동생을 돌봐야 했던 우리나라 장애인 가정의 잘못된 현실보다는 세상을 떠난 ‘천사 누나’의 안타까운 죽음이 더욱 부각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여기에 복지부가 활동지원서비스 예산 불용이라는 이면은 감추고 이미 발표되었던 계획들을 적당히 버무려 대책을 발표한다면, 잇따라 장애인을 죽음으로 내몬 근본적인 원인은 그대로인 채 또 흐지부지될까 우려됩니다.
여기서 올해 쓰지 못한 활동지원서비스 예산 800억 원이 어떤 의미인지 다시 한 번 되짚어보아야겠습니다. 김 의원은 현재 활동지원서비스 인정등급이 1급이면서 독거 추가급여를 받고 있는 1578명에게 24시간 활동보조를 제공했을 때 필요한 예산이 571억 6600만 원이라고 추정했습니다.
즉, 800억 원은 고 김주영 활동가에게 이미 활동보조 24시간을 보장해줄 수도 있었던 예산이었습니다. 임 장관은 이 800억 원의 의미를 알고 있을까요? 다음 주 수요일에 확인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홍권호 기자 shuita@bemino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