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등급제 폐지없는 발달장애인법 무용지물"
한국발달장애인가족연구소, 창립기념강연 개최
"미국에서 부양의무 부과는 '이중과세'"
2011.12.01 03:00 입력 | 2011.12.01 03:21 수정

▲국제발달장애우협회 전현일 이사장은 한국발달장애인가족연구소 창립기념강연에서 미국의 발달장애 지원체계를 소개하며 한국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장애등급제와 부양의무제를 폐지하지 않는다면 앞으로 발달장애인지원법을 제정하더라도 실효성을 확보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왔다.

 

한국발달장애인가족연구소 주최로 11월 30일 늦은 4시 서울여성플라자 아트컬리지에서 열린 창립기념강연에서 국제발달장애우협회 전현일 이사장은 미국의 발달장애 지원체계를 소개하며 한국의 지원체계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비판했다.

 

전 이사장은 “연방법인 '발달장애 지원 및 권리장전법‘에서는 발달장애를 기능상의 장애로만 정의한다”라면서 “따라서 미국에는 장애등급제가 없으며 발달장애인을 개별적으로 심사해 필요한 지원을 결정한다”라고 설명했다.

 

‘발달장애 지원 및 권리장전법’에서는 22세 이전에 나타나며 무기한 지속 가능하고, △자기 관리 △언어의 이해와 표현 △학습 △지체 동작 △자기 결정 △독립생활 능력 △경제적 자립 등 7가지 생활 영역 중 3가지 이상에 장애가 있을 때 발달장애로 정의하고 있다.

 

전 이사장은 “한국은 지적장애의 경우 지능지수에 근거해 등급을 부여하고 등급에 따라 서비스 신청 자격을 부여하고 있는데, 지능지수는 상당한 오차가 있다”라면서 “따라서 장애 정도에 대한 대략적인 구분은 될 수 있어도 개별적으로 필요한 지원을 결정하는 데 쓰일 수는 없다”라고 지적했다.

 

전 이사장은 “장애등급제는 행정상 편리할 수 있겠지만, 지능점수 1점 차이로 34인 경우에는 1등급이 되어 서비스 신청 자격을 얻고 35인 경우에는 2등급이 되어 서비스 신청 자격을 얻지 못한다면, 결국 어려움은 장애인과 그 가족이 겪게 된다”라면서 “또한 국가 재정의 입장에서도 이는 효과적인 사용을 기대하기 어렵다”라고 지적했다.

 

전 이사장은 “예를 들면 미국 위스콘신주에서는 한 비영리재단의 지원을 받아 실험적으로 발달장애인에게 개별 심사를 거쳐 예산을 설정하고 당사자가 배당된 예산으로 서비스를 골라 직접 결정해 쓰도록 했다”라면서 “그 결과 서비스에 대한 발달장애인의 만족도는 높아지면서도 예산은 오히려 줄어드는 성과를 거두었으며 이 같은 방식은 현재 다른 주로 퍼지고 있다”라고 전했다.

 

전 이사장은 “또한 미국은 18세 이상이면 독립적인 성년 시민이기 때문에 성년 장애인을 지원할 때 가족의 소득과 재산은 고려되지 않는다”라면서 “따라서 부모가 백만장자라도 성년이 된 장애인 자녀는 일정 조건을 충족하면 무상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라고 전했다.

 

전 이사장은 “이것이 가능한 것은 ‘발달장애 지원 및 권리장전법’에서 발달장애인은 서비스를 받을 권리가 있고 정부는 적절한 서비스를 제공할 의무가 있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라면서 “또한 이에 필요한 국가 재정을 위해서 이미 가족들이 정부에 세금을 내고 있음에도 가족에게 부양의무를 지우는 것은 이중과세로 이해된다”라고 설명했다.

 

전 이사장은 “이밖에 미국의 ‘발달장애 지원 및 권리장전법’에서 규정한 보호와 권리옹호시스템(P&A, Protection and Advocacy System)은 강력해 인권침해는 전화 한 통만으로도 즉시 변호사 등으로 이뤄진 팀이 바로 조사에 착수한다”라면서 “조사팀은 해당 시설 등에 방문하겠다는 편지를 보낸 뒤 3일이 지나면 아무 때라도 방문할 수 있으며 모든 자료의 열람이 가능하다”라고 전했다.

 

전 이사장은 “30년 전 처참했던 미국 장애인의 현실이 지금처럼 변모한 것은 뉴스 등을 통해 폭로된 대형시설의 참상에 충격을 받은 장애인, 장애인 부모와 학자들이 끊임없이 이를 개선코자 노력했기 때문”이라면서 “앞으로 한국에서도 실효성 있는 발달장애인지원법 제정을 위해서는 장애등급제와 부양의무제를 폐지하고 강력한 보호와 권리옹호시스템을 갖출 필요가 있다”라고 강조했다.

 

▲UN장애인권리위원회 김형식 위원이 '발달장애인의 권리와 인권'이라는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전 이사장과 함께 이날 창립기념강연에 강사로 나선 UN 장애인권리위원회 김형식 위원은 권리와 인권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김 위원은 “과거 장애인은 재활의 대상이었을 뿐이었지만, 시대가 변함에 따라 이제 장애인은 장애가 있는 시민으로서 권리를 말하고 있다”라면서 “이것은 장애인에 대한 편견, 차별, 장벽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의 문제임을 인식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김 위원은 “하지만 아직 복지체계는 권리에 따른 보편적 복지가 아니라 시혜와 동정의 잔여적 복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라면서 “결국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싸워야 하며, 싸우지 않으면 결코 힘은 생기지 않는다”라고 강조했다.

 

김 위원은 “인권은 이에 대해 말하기 시작하면 사람과 사람 사이에 불편한 관계가 형성된다는 점에서 어려움이 있다”라면서 “예를 들면 시설에 거주하는 장애인이 인간다운 삶을 위해 지역사회에 나가 살겠다고 말한다면 시설장과의 관계는 불편해질 수밖에 없다”라고 설명했다.

 

김 위원은 “하지만 불편한 관계를 피하고자 말하지 않는다면 변화는 없으므로 우리는 인간답게 살 권리인 인권을 말해야 한다”라면서 “단, 장애인만 장애인의 인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비장애인도 일상적으로 장애인의 인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수준이 되어야만 장애인의 시민적 권리가 자리를 잡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창립기념강연은 같은 날 저녁 7시 서울여성플라자 회의실에서 열린 한국발달장애인가족연구소 창립기념행사의 앞선 일정으로 진행했다.



홍권호 기자 shuita@bemino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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