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는 김주영 동지와 같은 억울한 죽음 없어야"
 
장애해방운동가 고 김주영 동지 장례식 열려
율곡로에서 경찰과 4시간 대치하며 노제 치러

2012.10.30 18:45 입력

 

▲장애해방운동가 고 김주영 동지 장례식이 30일 이른 11시 광화문광장에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장으로 열렸다.

 

너의 마지막 가는 길은 외롭지 않구나. 너의 꿈이었던 24시간 활동보조, 장애인 인권에 기여하는 삶. “사람한테 무슨 등급이에요.” 이렇게 너는 우리에게 뜨거운 투쟁을 남기고 떠나는구나. (인권연대 장애와여성 ‘마실’ 김광이 대표 추모글 중 일부)

 

활동보조인이 퇴근한 집에서 홀로 잠을 자다가 26일 새벽 2시께 발생한 화재로 질식사한 고 김주영 활동가의 장례식이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장으로 7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30일 이른 11시 광화문광장에서 열렸다.

 

이날 장례식에서 장애해방열사 ‘단’ 박김영희 대표는 “경찰 방패 앞에서 한겨울에는 추위에 떨고 한여름에는 얼굴에 흐르는 땀을 닦을 수 없어 눈을 찡그리며 싸우던 네가 화염 속에서 혼자 죽음을 맞이했다”라면서 “너를 마지막 본 날도 너는 전동휠체어에 피켓을 걸고 지역으로 가서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 문제를 널리 알리겠다고 말했다”라고 회상했다.

 

박 대표는 “‘단 한 명의 장애인이라도 자유롭지 않다면 투쟁해야 한다’는 너의 말이 이제 기억으로 남았다”라면서 “우리는 아직 너를 떠날 준비도, 너의 떠날 마음도 없다. 너의 소원이었던 24시간 활동보조를 쟁취할 때까지 우리와 함께 투쟁할 것이라고 믿는다.”라고 추모했다.

 

 

▲추모사 중인 장애해방열사 '단' 박김영희 대표

 

인권연대 장애와여성 ‘마실’ 김광이 대표는 “입에 스틱을 물고 119로 전화를 할 정신까지 있었는데, 얼마나 사람을 찾았을까. 얼마나 두렵고 고통스러웠을까”라면서 “3미터, 네다섯 발자국이면 되는 거리를 너는 왜 튀어나오지 못했니”라며 오열했다.

 

김 대표는 “기억하마. 너의 뜻, 네가 느끼고 싶어했던, 중증장애여성들이 그 모습 그대로, 일에서도 연애에서도 당당하게 사랑받고자 했던 너의 강렬했던 욕구를 잊지 않으마”라면서 “주영아, 이리 남은 자들은 스스로를 위로하고 새로이 결의를 다진다”라고 추모했다.

 

아시아·태평양장애포럼 라토아 할라타우(Latoa Halatau) 부의장은 “시설에서 나와 지역사회에서 자립생활을 하고자 했던 그분의 죽음에 대해서, 안타까운 장애여성 리더를 잃은 것에 대해 깊은 애도를 표한다”라면서 “고인의 죽음은 인천세계장애대회에 참석한 많은 사람에게 교훈이 되고, 새로운 10년 동안 장애인의 권리를 실현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추모했다.

 

진보신당 김종철 대표 직무대행은 “지금으로부터 십 년 전 장애인들이 쇠사슬로 몸을 묶고 철로로 내려가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하던 여성이 있었다”라면서 “그런데 그 여성이 두 아이의 엄마가 되면서 그때 왜 장애인들이 선로를 가로막았는지 알았고, 장애인들의 투쟁이 오늘날 나에게 인간다운 삶을 살아갈 수 있게 해주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라고 전했다.

 

김 대표 직무대행은 “김주영 동지는 생을 마감하면서 십 년 전 선로로 내려간 장애인들처럼 우리에게 또 하나의 교훈과 투쟁, 나아갈 방향을 남겨주었다”라면서 “중증장애인에게 24시간 활동보조가 시행될 때까지 김주영 동지의 뜻에 따라 끝까지 투쟁하자”라고 강조했다.

 

진보정의당 노회찬 대표는 “김주영 동지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과정을 살펴보면 동지의 죽음은 바로 대한민국의 타살”이라며 “김주영 동지는 죽은 뒤에 전동휠체어가 필요 없는 세상, 장애인차별이 존재하지 않는 세상으로 갔지만 김주영 동지를 죽음에 이르게 한 사회는 그대로 있다”라고 지적했다.

 

노 대표는 “장애인은 동정과 시혜의 대상이 아니라 헌법으로 보장된 기본적 권리를 누릴 수 있는 국민으로 이동권, 학습권, 직업의 자유 등을 누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이 사회의 임무일 것”이라며 “제2의 김주영 동지의 죽음과 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통합진보당 이상규 의원은 “더 살아야만 하고 더 살 수 있는 아름다운 청춘이 너무나 안타깝게 허망하게 갔다”라면서 “참 잘못되고 무자비한 사회이다. 차별 없는 세상, 장애인도 당당한 주체로서 살아갈 수 있는 그 사회를 위해 함께 싸우겠다.”라고 밝혔다.

 

민주통합당 남윤인순 의원은 “활동보조제도화 등 장애인인권 투쟁에 앞장섰던 그녀가 바로 활동보조가 없던 시간에 난 화재로 죽었다. 만약 24시간 활동보조가 제공되었다면 이토록 억울한 죽음은 없었을 것”이라면서 “활동보조 시간을 늘리고 부양의무제를 폐지하고, 장애로 서비스가 필요한 사람에게 필요한 서비스가 제공될 수 있도록 하겠다”라고 밝혔다.

 

 

▲장례식을 마친 뒤 복지부로 행진하는 참가자들.

 

이어 장례식을 마친 참가자들은 보건복지부 앞으로 이동해 ‘보건복지부 규탄 및 활동보조 24시간 촉구 기자회견’을 열려고 했으나 율곡로 등지에서 행진을 막는 경찰과 4시간 가까이 대치했다.

 

이 과정에서 경찰은 전 차선으로 행진하려는 참가자들에게 일부 차선으로 행진할 것을 요구하며 전동휠체어를 들어서 옮기거나 잡아당기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장애청년국제인터십으로 한국에서 연수 중인 노레일 압바스(Naureel Abbas) 씨 등 3명이 휠체어에서 떨어지는 등 부상을 당해 구급차로 병원에 이송됐다.

 

참가자들은 경찰의 봉쇄가 계속되자 그 자리에서 정리집회를 열고 장례식 일정을 마무리했다.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아래 한자협) 이원교 회장은 “우리는 이제 중증장애인이 이 땅에서 살기 위해서는 얼마나 처절한 몸부림을 쳐야 했는지 온몸으로 보여주었던, 장애인의 자립생활이 얼마나 소중하고 어려운 것인가를 보여주었던 동지를 떠나보내려 한다”라면서 “김주영 동지와 동료상담을 하면서 그녀의 가슴 속에 맺혔던 한과 절규, 희망을 들었기에 더욱 가슴이 아프다”라고 심정을 밝혔다.

 

이 회장은 “김주영 동지뿐만 아니라 시설에서, 지역사회에서 수많은 장애인이 차별받고 죽어가는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이라면서 “김주영 동지가 왜 죽었는지 영원히 기억하면서 장애해방의 그날까지 투쟁하자”라고 강조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전장연) 박경석 상임공동대표는 “최옥란 열사가 돌아가신 지 십 년이 지났지만 이 땅에서는 가난하다는 이유로,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생존할 권리조차 얻지 못하고 수많은 이들이 죽어가는 것이 현실”이라면서 “더는 이러한 죽음이 없도록 끝을 내면 좋겠다”라고 밝혔다.

 

박 상임공동대표는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를 위해 71일째 광화문역에서 농성하고 있는데 도대체 언제까지 우리가 시민에게 서명을 받으며 이야기를 해야 생존할 권리를 보장할 것인가?”라면서 “우리의 힘으로 24시간 활동보조,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를 쟁취하자”라고 강조했다.

 

이날 광화문 장례식을 마친 고 김주영 활동가의 시신은 늦은 2시께 벽제 화장터에서 화장을 하고 5시 무렵에 광명메모리얼파크(광명시립납골당) 105호 안치됐다.

 

한편, 전장연 박경석 상임공동대표와 한자협 이원교 회장은 장애인 장례를 마치고 복지부에서 장애인정책국 이재란 장애인서비스팀장 등과 면담했으나 복지부는 기존 견해를 되풀이했다.

 

전장연 박 상임공동대표는 “이날 면담에서 24시간 활동보조 시행, 활동지원제도 인정조사표 점수 기준 하향과 본인부담금 폐지를 요구했다”라면서 “하지만 복지부는 '24시간 활동보조는 예산 때문에 어렵지만 실태조사 후 종합적 검토를 하겠다, 활동지원제도 인정점수 기준 하향은 인정조사와 관련한 기준표를 개선하고 있다, 본인부담금 폐지는 불가능하다'고 답했다.”라고 전했다.

 

▲광화문광장에 도착한 고 김주영 활동가 영정

 

 

▲영정에 헌화하는 장애인 활동가들.

 

 

▲오열하는 성동장애인자립생활센터 최진영 소장.

 

▲추모글을 낭독하는 인권연대 장애와여성 '마실' 김광이 대표.

 

 

▲추모공연 중인 장애인노래패 시선

 

 

▲APDF 부의장(왼쪽)이 연대 추모사를 하고 있다.

 

 

▲추모사 중인 진보신당 김종철 대표 직무대행, 진보정의당 노회찬 대표, 통합진보당 이상규 의원, 민주통합당 남윤인순 의원.

 

▲장례식에 참가하기 위해 전국에서 모인 700여 명의 사람들.

 

 

▲고인의 뜻을 이어받겠다고 다짐하는 사람들.

 

▲투쟁사 중인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박경석 상임공동대표.

 

▲복지부 앞으로 행진을 시작한 모습.

 

▲율곡로에 들어선 만장.

 

▲전 차선으로 행진하려는 참가자들과 일부 차선으로 행진을 통제하려는 경찰이 곳곳에서 충돌했다.

 

 

▲아예 차량으로 행진을 못하도록 막은 경찰.

 

▲안쪽 차선으로 참가자들을 이동시키기 위해 휠체어를 잡아당기는 모습.

 

 

▲대여섯 명의 경찰에 의해 들려 나오는 참가자들.

 

▲경찰과의 충돌 과정에서 부상을 호소한 참가자가 응급차에 이송되는 모습.

 

 

▲자리에 앉아 경찰에 차선을 열어주기를 요구하는 모습.

 

▲늦은 3시 40분께 율곡로에서 구호를 외치며 정리 집회를 하는 모습.

 

▲늦은 5시께 광명메모리얼파크(광명시립납골당) 105호 안치된 고 김주영 활동가.

 

▲마지막 인사를 나누는 사람들.

 

 

 

 



 
홍권호 기자 shuita@bemino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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