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리해고와 관계 없는 장애인?
노동해방 세상에서 장애인은 어떤 모습으로 노동할까?
2012.07.03 18:09 입력 | 2012.07.07 03:46 수정

얼마 전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서울인권영화제에서 개막작으로 '버스를 타라'를 상영한다기에 동료들과 함께 개막식에 참가했다. '버스를 타라'는 지난해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투쟁에 함께하기 위해 온갖 사람들이 버스를 타고 부산 영도를 향했던 희망버스에 관한 다큐멘터리다. 나와 동료들의 모습이 어떻게 나올까, 숨은그림찾기라도 하듯 스크린에 집중했지만 카메라는 전동휠체어 뒤에 걸린 "해고는 살인이다"라고 적힌 피켓만 비출 뿐이었다. 네가 투쟁을 제대로 안 해서 그렇다는 둥 우리 쪽수가 얼마 안 돼 그렇다는 둥 되도 않은 이야기를 쑥덕거리는 사이 스크린에는 희망버스의 의미를 짚어보는 인터뷰들이 이어졌다. 한 인터뷰이의 말이 귀에 훅 들어왔다. '성소수자나 장애인 같은 정리해고 문제와 관계가 없는 사람들까지 희망버스에 탔는데, 이게 의미하는 바가 무엇이겠냐'는 거였다. 정리해고와 장애인은 관계가 없나? 맞는 듯, 아닌 듯 헷갈리는 말이었다. 그렇다면 장애인이라고 불리는 존재들은 왜 희망버스에 탄 것일까?

 

▲2차 희망버스에 오르는 장애인운동활동가들.

 

그의 말대로 장애인은 정리해고 문제와 ‘관계가 없는’, 직접적인 연관성이 낮은 사람일 수 있다. 그의 의도도 장애인은 노동에 참여하기 어려운 존재가 아니냐는 것일 터. 그렇다. 장애인 대다수가 일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2011년 장애인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장애인의 61.5%는 비경제활동인구로 분류된다. 비경제활동인구는 만 15세가 넘은 인구 가운데 취업자도 실업자도 아닌 사람을 말한다. 일할 수 있는 능력은 있으나 일할 의사가 없거나, 전혀 일할 능력이 없어 노동공급에 이바지하지 못하는 사람을 이르는 말이다. 게다가 장애인 실업률은 7.8%로 나타나고 있으니, 전체 장애인구 중 70%가량이 노동하지 않는다고 볼 수 있다. 전체 인구 가운데 비경제활동인구는 38%, 실업률은 3.3%로, 장애인이 정리해고 같은 문제로 고민할 일이 비장애인에 비해 적을 수 있겠다.

 

어디 그뿐인가. 장애인이 이 사회에 관여하는 지점은 비장애인보다 월등히 낮다. 중등교육이 의무화되고, 고등학생의 대학 진학률이 70%가 넘는 현시점에서도, 여전히 장애인의 45.5%는 초등학교 졸업 이하의 학력으로 살아가는 실정이다. 제대로 배우지 못하고 노동하기 어려운 현실 조건에서 장애인의 많은 수가 기초생활수급자로 빈곤하게 살아가거나 가족에 의지해, 시설에 갇혀 평생을 살아간다. 다시 돌아가서, 이처럼 장애인이 처한 현실은 일개 공장에서 벌어지는 정리해고 문제에 관심을 둘 정도로 여유롭지 않다는 뜻이다. 이런 맥락에서 오죽하면 장애인들까지 희망버스에 탔겠냐는 그의 말은 한진의 사태가 그 정도로 심각했음을, 한진 투쟁이 그만큼 치열했음을 드러내 준다. 하지만 장애인은 정말 노동자들의 정리해고 문제와 관계가 없을까?

 

정리해고와 장애인

 

현실에서는 장애인과 노동 사이에 이런 거리감을 느끼지만, 장애인이야말로 노동시장의 형성과 긴밀히 관계돼 있는 존재다. 이는 국가에서 정하고,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장애인'이라는 개념과 범주가 형성돼가는 과정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자본주의 발전의 역사에는 이른바 시초축적이라고 불리는 국가와 자본의 폭력이 있었다는 사실을 다들 잘 알 것이다. 자본주의가 빠르게 사회 질서를 잠식해가는 과정에서 자본주의의 질서에 길들지 않는 사람들 또는 길들여지길 원하지 않는 사람들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이에 15~16세기 서유럽 대부분의 나라가 이른바 거지, 도둑, 부랑자로 분류된 이들을 범죄자로 규정하고, 이들을 훈육하기 위한 법을 만들었다고 한다. 국가의 목표는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이들을 최대한 노동 가능한 신체로 바꿔내는 것.

 

하지만 이들 범죄자 가운데는 노동할 수 없는 신체, 폭력으로도 길들지 않는 신체가 섞여 있었다. 이에 국가는 노동이 절대로 불가능한 이 계층과 노동할 수 있지만 하지 않는 이들을 분리하게 된다. 그리고 이 노동 불가능한 계층(장애학 연구자 김도현은 이들을 일컬어 ‘불인정노동계층’이라고 명명한다)에 대한 특별 대우를 시작한다. 이것이 바로 '장애인'이라는 범주가 형성되기 시작한 역사이자 장애인을 이 사회와 분리해 온 역사다. 이는 장애인운동계에서 첨예하게 다투고 있는 장애인생활시설-많은 노동자가 시설에 후원하거나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의 역사와도 닿아있다. 물론 이전에도 신체적, 정신적 손상이나 특이성이 있는 존재들은 있었다. 하지만 이들을 ‘장애인’이라고 범주화하지 않았으며, 지금처럼 확연하게 사회와 분리하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재능교육 해고노동자 천막농성장을 찾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활동가들.

 

장애인은 누구인가?

 

2010년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활동가들이 민주노총에서 주최한 노동절 행사에 참석했다가 찝찝한 마음을 안고 돌아온 일이 있다. 민주노총 위원장이 미리 준비해온 대회사를 읽는데, ‘이명박 정부는 반신불수 정권’이라는 표현을 쓴 것이다. 반신불수는 편마비가 있는 사람을 뜻하는 말로 넓게는 장애인을 의미한다. 위원장이 이명박 정권을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것에는 이견이 없지만, 이것을 장애인에 비유해 표현한 것은 그야말로 명백한 실수였다. 사안에 따라 장애인운동에도 함께해 온 그가 편마비 장애인을 부정적으로 표현하려는 의도가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후 위원장이 문제가 된 발언에 대해 진중하게 사과하는 것으로 사건은 마무리되었지만, 이 사건이 드러내고 있는 ‘장애인’의 사회적 의미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듣기 좋은 표현이 아닌 것은 분명하지만 ‘반신불수 정권’이라고 했을 때, 그것이 제구실을 못하는, 부정적인 것을 표현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쉽게 이해한다. 이것은 반신불수, 장애인이라는 존재 자체가 현실에서 부정적인 것으로 이해되기 때문이다. 장애인에 대한 차별이 만연한 현실에서, 장애인이 개성 있는 사람 같은 긍정적인 이미지로 받아들여지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심지어 ‘장애’의 뜻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거치적거리고 방해가 되는 것이라고 나온다. 거치적거리는 것이 물체일 때 장애물, 거치적거리는 것이 사람일 때 장애인이라고 부른다. 탁 까놓고 말해 주류 사회는 장애인을 신체적·정신적 손상의 문제로 타인에게 거치적거리고, 폐 끼치는 존재로 정의하고 있다. 문제의 대회사도 이런 주류 시선에서 비롯됐다고 본다. 이런 실수는 장애를 이해하는 관점을 바꾸지 않는 한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 우리는 비장애인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사회에서 비장애인 중심적인 사고를 학습 받으며 살아왔기에 ‘장애’에 대한 성찰 없이 인식을 바꾸기 어렵다. 이는 장애인 당사자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인식 전환의 관건은 장애인에 대한 차별을 누가 하고 있는가, 차별이 어디서 발생하는가를 지목하는 일이다.

 

2000년 초반부터 뜨겁게 일어났던 장애인이동권 투쟁에 대해 들어보았을 것이다. 이는 휠체어를 타거나 보행에 어려움이 있는 교통약자들이 지하철을 안전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지하철 역사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하라고 요구하는 투쟁이었다. 또한 휠체어를 탄 사람도 시내버스를 탈 수 있도록 계단이 없는 저상버스를 도입하라고 요구한 투쟁이기도 하다. 이 과정에서 휠체어를 탄 사람들이 지하철이 다니는 선로에 내려가 쇠사슬로 서로의 몸을 묶고 지하철 운행을 온몸으로 막거나, 주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버스에 오른 뒤 버스에 자신의 몸을 묶고 버스에서 내리지 않는 강경한 투쟁이 진행됐다.

 

실제로 사회의 많은 변화를 이끌어낸 이 장애인이동권 투쟁을 통해, 우리는 어렵지 않게 ‘장애’의 개념을 바꿔낼 수 있다. 장애가 발생하는 원인이 걷지 못하는 사람의 신체에 있는가, 엘리베이터가 없는 지하철 역사에 있는가? 대부분의 지하철역에 엘리베이터가 설치된 지금은 휠체어를 탄 사람도 지하철을 큰 무리 없이 이용할 수 있으니, 장애 발생의 원인은 엘리베이터가 없는 지하철역이라고 할 수 있다. 휠체어를 탄 사람이 장애인이라고 느낄 때는 두 발로 걸어 다니는 사람을 기준으로 만들어진 세상과 만날 때이다. 버스 출입구가 계단으로 설계돼 있어 버스에 오를 수 없을 때 말이다. 이처럼 장애란 특정인의 몸에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다양한 구성원을 고려하지 않은 채 설계된 사회 환경에서 발생한다. 이런 차별적인 사회 환경으로 말미암아 장애인 가운데 13.4%는 아직도 1달에 3번 이하로 외출하며 살아간다.

 

▲서울 대한문 앞 쌍용차 희생노동자 분향소.

 

우리는 만나야 한다

 

진보장애인운동 진영이 여러 사회운동과 만나려는 움직임이 늘고 있다. 최근 들어 정리해고를 당하고 거리에서 투쟁하는 노동자들과의 만남이 잦아졌다.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투쟁에도, 희망버스에 함께하는 것으로 힘을 보탰고, 재능교육 해고노동자,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과도 만나고 있다. 장애인운동진영이 이들의 투쟁에 연대하는 건, 이들의 싸움에서 노동자를 손쉽게 쓰고 버리는 자본주의의 병폐와 악랄함을 보기 때문이다. 노동시장에서 상품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장애인을 사회의 폐기물로, 기생계층으로 전락시킨 그 자본주의 말이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박경석 공동대표는 5월 대한문에 차려진 쌍용자동차 희생 노동자 분향소에서 열린 문화제에서 이런 말을 전했다. “사람을 쓰다 버리면 폐기물이 됩니다. 사람을 폐기물로 전락시키는 노동시장의 현실…. 장애인은 집구석과 시설에서 갇혀 살다가, 더는 폐기물로 살기 싫어서, 이동하고 교육받고 싶어서, 그리고 노동시장에 참여하고 싶어서 투쟁하고 있습니다. 한쪽에서는 폐기물로 전락하는 것을 막기 위해 싸우고, 또 다른 쪽에서는 폐기물로 낙인찍힌 채 살아가야 하는 현실을 벗어나기 위해 투쟁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 두 개의 투쟁이 만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일하지 않는 자들의 메이데이

 

지난 2009년 노들장애인야학 학생, 교사들이 노동절 집회에 ‘일하지 않는 자들의 메이데이’라는 선전물을 들고 참가했다. ‘일하지 않는 자여 먹지도 마라~’라는 그 유명한 민중가요에서 일하지 않는 자는 자본가를 겨냥하고 있지만, 노들야학의 구호 속 ‘일하지 않는 자들’은 자본주의 노동 시장이 거부한 장애인 자신을 말한다. 심하게는 사회의 ‘기생적 소비계층’이라고도 불리는 장애인이 노동운동에 함께하고자 한다는 것, 그것이 어떤 의미이며 또한 노동자들은 이들과 함께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 생각해보아야 할 때이다. 비록 그 힘이 미미할지라도 말이다. 또한 우리가 자본주의 노동방식을 거부하고 저항하고 있다면, 우리가 원하는 노동은 어떤 모습일지 고민해보는 일도 필요할 것이다. 노동해방 세상에서 장애인은 어떤 모습으로 노동하고, 어떤 방식으로 살게 될 것인지도… 투쟁과 상상력이 필요한 때이다.

 

▲'우리의 신체성 자체가 자본주의를 부정한다'라고 적힌 장애인활동가의 선전물.

 

*이 글은 평등사회노동교육원이 펴내는 <함께하는 품> 창간호에도 실렸습니다.



김유미 노들장애인야학 교사 slowda@bemino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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